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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곤 내분비내과 교수, 보건의료는 치유와 화합을 위한 가장 따뜻한 수단
  • 글쓴이 : 고대투데이
  • 조회 : 900
  • 일 자 : 2022-07-09


김신곤
고려대의료원 내분비내과 교수
보건의료는 치유와 화합을 위한 가장 따뜻한 수단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은 보건의료 분야에서 여러 가지 교훈을 안겨주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이웃이 건강하고, 사회 구성원 전체가 건강해야 나도 건강한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계속 새로운 변이를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보건의료는 더 이상 한반도 남쪽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명확해졌다. 이에 따라 통일보건의료학회를 중심으로 이전부터 논의되던, ‘한반도 건강공동체 준비’가 급부상하고 있다.

 

당뇨병, 내분비 전문가인 김신곤 교수의 또하나의 직함은 통일보건의료학회 이사장이다. 2014년 창립된 통일보건의료학회는 ‘보건의료를 매개로 한 통일 준비’에 뜻을 같이 한 전문가들이 모여 만든 플랫폼으로 다양한 학제 연구와 학술 교류를 하고 있다. 의학, 보건학, 치의학, 한의학, 약학, 간호학 등 보건의료 전 분야를 망라한다. 최근에는 <한반도 건강공동체 준비>라는 책도 펴냈다.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재앙이 될 수 있어요. 그래서 통일로 가기 전, 공동체 단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민족에게는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인 경험이 각인되어 있고, 여전히 증오하고 갈등하는 상황에서 영토가 통합되었다고 사람이 통합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중에서도 출발점이 될 수 있는 것이 건강공동체예요. 남북한이 70년 동안 갈라져 서로 이방인처럼 된 지금,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치유의 도구가 보건의료이기 때문입니다. 건강공동체를 시작으로 문화공동체, 경제공동체 등으로 나아갈 수 있고, 통일 직전이 된다면 정치, 군사공동체도 가능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통일보건의료학회는 ‘한반도 건강공동체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바이러스, 미세먼지, 지진 등 위기 요인 공동관리해야

그는 특히 ‘위기의 공동관리’라는 측면에서 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번 팬데믹에서 보듯, 바이러스나 세균의 습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 세계 전체가 함께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 헬스, 원 월드(One-health, One-world)’라는 용어도 생겼어요. 한반도는 22만 평방킬로미터의 굉장히 작은 땅덩어리입니다. 바이러스가 비무장지대(DMZ)가 있다고 해서 못 넘어오는 것은 아니죠. 한 예로, 북한발 말라리아가 생기면서 이미 사라졌던 남한에도 다시 창궐한 때가 있어요. 개성공단이 열려 있을 때, 남북한이 공동방역을 하면서 북한의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노력한 결과, 우리도 없어졌습니다. 바이러스나 세균은 남북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노력해야 합니다. 미세먼지나 지진 같은 재해들도 마찬가지고요. 이제는 ‘한반도 건강공동체’라는 차원에서 위기 극복을 위해 공동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2019년 5월 북한의 단거리미사일 발사 당시, 평양 최경태내분비연구소에서 국제당뇨병연맹 및 조선병원협회 회장단과 함께.

개성공단 활용방안 고민해야

이와 함께 그는 개성공단의 창의적인 활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리가 지금 정전 상태이지만 인류 공동의 적인 바이러스를 상대로 힘을 모아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개성공단을 팬데믹 극복을 위한 치료물자, 백신생산기지로 전환하자는 것”이라며, “북한의 보건의료와 관련된 물품들을 거기서 직접 생산함으로써 현금이 아닌 현물 지원을 할 수 있고, 잉여물자는 개발도상국에게 싼 가격으로 공급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에서는 팬데믹이 남북간 의료 협력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아무 이유없이 비핵화를 선언할 리도 만무하고, 미국이나 국제사회가 갑자기 유엔제재를 해제할 리도 없는, 서로 전략적 인내를 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요. 사람을 치유하고, 생명을 구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시되는 가치이기 때문에 북한이 봉쇄를 푸는데 충분한 명분이 될 수 있지요.”

통일시대 보건의료전문가 양성을 위한
‘통일보건의학협동과정’

한반도 건강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 양성도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 고려대는 국내 유일의 학위과정으로 ‘통일보건의학협동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통일 시대’를 대비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졌던 통일보건의학을 집중적으로 다루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다학제적·통섭적 연구를 수행한다.

“북한의 보건의료 현황을 이해하고, 남북한의 보건의료 지식과 기술교류에 앞장서는 한편, 건강한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보건의학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김영훈 의료원장님이 처음 이 과정을 만드셨고, 지금은 제가 맡고 있어요. 이 과정을 듣는 분들은 대부분 보건의료 관계자들이지만 통일보건의학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남북보건의료 분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사전학편찬센터와 협업해 <남북의학용어집>도 펴냈다. 같은 용어라도 영어를 쓰는 우리나라와 달리 북한은 라틴어, 독일어를 기반으로 한다. 가령 엑스레이를 북한에서는 뢴트겐으로, 바이러스를 비루스라고 부르는 식이다. 출생에서 임종에 이르기까지, 보건의료 소통은 생명과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용어집 편찬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아픈 가족사에서 시작된 통일보건의료에 대한 관심

그가 통일보건의료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개인적인 사연이 있다. 그의 가족은 한국전쟁 때 종교 문제로 인해 무려 21명이 순교하는 큰 아픔을 겪었다.

“전공의 때인 2005년에 쓰나미로 온 나라가 폐허가 된 스리랑카에 긴급구호팀으로 가게 됐어요. 가보니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이 많더라고요.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았고, 당시에도 내전 중이어서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어요. 돌아와 한국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는지 자료를 찾아봤더니 무려 5백만 명이더라고요. 특히 북한은 90년대 ‘고난의 행군’ 때 수십만 명에서 많게는 200만 명으로도 추정되는 숫자가 굶어 죽었고요. 잊고 지냈던 제 가족사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다른 나라를 돕겠다고 하면서 정작 우리 땅의 문제를 살피지 못했다는 게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 2008년부터 탈북민들 무료검진을 시작했지요.”

통일보건의료학회 간담회

같은 민족, 다른 환경이 질병에 미치는 영향 규명하는 연구

그는 이들의 검진 결과를 바탕으로 ‘동일 민족의 이주민 코호트(NORNS)’를 구축했다. 탈북민들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면서 대사 질환이 많아진다는 점을 지적한 그는 “국가연구비를 받아 이들을 더 많이 걷게 하고, 운동량을 측정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도 제공하고, 영양 상담도 하면서 생활습관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중재연구’를 했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 탈북민 전수인 3만 4천 명을 대상으로 남북한 주민건강 비교연구도 계획 중이다. 탈북민과 우리나라 사람을 1:20 정도로 묶어 총 70만 명의 감염성 질환과 비감염성 질환의 발병 양상, 실제 북한주민들이 사망에 이르는 질병은 어떤 것이고 남한과는 어떻게 다른지, 기대 여명은 어떤지 등을 규명할 예정이다.

이 연구가 한반도 전체로 확대되면, 유전적 배경이 유사한 상황에서 오랜 기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질병 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연구가 가능해진다. 그는 “남북한이 교류, 협력하면서 주민건강 비교연구를 시작한다면 의학사에 기념비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언젠가는 꼭 그런 연구를 하게 되는 것이 통일보건의료학회의 소망”이라고 말했다.

한반도의 상처 치유가 보건의료인들의 사명

그는 “한반도 건강공동체는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한 서로 협력해 의학적으로 기념비적인 연구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고, 좋은 건강모델을 개발해 다른 나라에 수출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것들이 또다른 부가가치를 만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성공단에서 한국형 백신이 나온다면, 매우 상징적인 ‘문명사적 가치’가 있습니다. 한반도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반(反)생명의 상징인 전운이 감도는 곳인데, 그런 곳에서 인류의 생명을 구할 백신이 개발된다면, 그 자체가 하나의 메시지가 되는 것이죠. 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서 불과 60km 떨어진 곳인데 영·유아 사망률은 다섯배 이상 차이가 난다. 생명의 무게가 다르지 않고, 이웃이 당하는 고통의 무게를 남의 문제로 돌릴 수 없다. 한반도는 70년 된 중증 환자라 회복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치유해야 한다’고요. 그것이 지금 한반도를 살아가는 보건의료인들의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