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에게는 ‘상상력’이란 이름의 시력이 있다. 하늘 위 뭉게구름에서 온갖 사물을 척척 찾아내는 어린아이처럼, 현미경 속 작은 세포에서 식물이며 동물이며 사람을 잘도 끄집어낸다. 마이크로현미경으로 바라본 그의 세상엔 보잘것없는 것들이 하나도 없다. 별 것 아닌 것들이 ‘별처럼’ 스스로 빛을 낸다. 연구실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충만해진다.
“세월이 쌓이니 눈이 점점 밝아져요. 전엔 일주일에 한 개 찾기도 힘들었는데, 요샌 하루에도 두세 개씩 예술적인 그림이나 해학적인 장면이 눈에 들어와요. 오랜 훈련의 결과여서 더기분이 좋아요.”
대장암 사진은 나무들이 울창한 숲 같고, 폐암 사진은 벚꽃이 활짝 핀 봄 같다. 요산 결정체는 불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들을, 대장 용종은 메두사의 풍성한 머리를, 기관지 점액은 여인의 우아한 춤사위를 떠오르게 한다. 흰 수염이 우아한 할아버지의 옆모습은 무릎 관절 연부 조직을 100배 확대한 것이다.
이 사진으로 그는 제9 회 바이오현미경 사진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수염뿐 아니라 눈과 눈썹, 코와 머리카락까지 실제 할아버지의 얼굴을 닮아있어, 마치 솜씨 좋은 화가가 그린 한 폭의 인물화 같다.
그의 사진들엔 하나같이 ‘이야기’가 있다. 그는 유방암 사진에서 ‘아기 업은 여인과 만주로 떠나는 그녀의 남편’을, 갑상선 사진에서 ‘지게 지고 가다가 담배 한 대 피며 쉬어가는 남자’를 떠올릴 줄 안다. 흰 수염 할아버지의 붉은 얼굴은 ‘첫사랑을 떠올리며 막걸리를 한 사발 들이켠’ 모습이다. 감전돼서 떨고 있는 타조가, 강아지에게 끌려가는 귀부인이, 사진 속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단지 현미경을 들여다봤을 뿐인데 갈수록 ‘타고난 이야기꾼’이 되어간다. 아이 같은 순수함이 그에게 없었다면, 그토록 재미난 사진들이 ‘포착’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현미경 속 세상이라는 게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잖아요. 근데 그 안에 말할 수 없이 광활한 세상이 펼쳐져 있어요. 발견하는 즐거움이여간 크지않아요.”
그가 관찰하는 조직들은 모두 수술 후 체취돼 그에게로 오는 것들이다. 누군가의 아픔을 예술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병든 세포들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 예술로 ‘승화’하는 작업이다. 그렇더라도 너무
슬픈 사연을 가진 것들은 작품으로 남기지 않는다. 그것이 의학자로서의 도리라 믿기 때문이다. 똑같은 장면도 그는 각도를 달리하며 볼 줄 안다. 거꾸로 뒤집었을 때, 옆으로 돌렸을 때, 다른 색을 입혔을 때.... 전혀 다른 느낌으로 태어난다는 걸 경험으로 이미 안다. 그 경험이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눈을 성장시킨다. 같은 것을 다르게 볼 줄 아는 눈. 그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전보다 훨씬 넓고 깊다.
다른 길 같은 기쁨
그와 사진은 인연이 매우 깊다. 고교 때부터 카메라를 ‘만졌던’ 그가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은 건 1981년 레지던트 1년차 때다. 달리는 차안에서 오다가다 풍경사진을 찍은 것이시작이었다.현미경사진은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했다. 병리학을 위해 찍기 시작한 사진은 갈수록 예술의 영역으로 확대됐고, 예술로서의 현미경사진은 고맙게도 그가 병리학자로서의 길을 걷는 데 큰 도움을 줬다. 현미경사진 외에도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진이 그에게 있다. 그는 해마다 정기 고연전에 참가해 카메라로 현장을 기록한다. 학교 곳곳의 풍경사진도 꽤 많이 찍어뒀다. 모교사랑을 렌즈로 키워간다.
“화가 한 분이내현미경사진을 유럽에서 전시하자고 해요. 근데 이름을 알리려고 시작한 게 아니기 때문에, 시간적 여유를 갖고 천천히생각하려고요. 대신일반 사진전은 두 번이나 했어요. 몽골사진전과 아프리카사진전이요. 두 곳은 내가 오래도록 봉사활동을 다닌 곳이에요. 특히 몽골은 봉사의 기쁨을 처음 알려준 곳이라 애정이 커요.”
흰수염 할아버지, 제9회 바이오현미경사진전 대상작.
사진에서 봉사로 자연스레 이야기가 넘어가듯, 그의 삶은 의학과 예술과 봉사를 명료하게 구분하기힘들다. 연구하면서
사진 찍고, 봉사하면서 사진 찍는 게 그의 삶이기 때문이다. 그가 맨 처음 몽골에 간 건 그의 전문분야인 ‘미라’ 때문이었다.
몽골 고고학계에서 그에게 미라 분석을 의뢰했던 것. 연구 목적으로 그곳을 찾았던 그는 그곳의 열악한 의료 환경을 눈으로
본 뒤 2005년부터 그곳으로 의료봉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2007년엔 대한병리학회 회원들과 그곳에 가서, 몽골의사들이
스스로 자궁경부암을 조기에 진단하게 하는 ‘몽골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현미경으로 암을 진단할 수 있는 의사가 5 명도 채 안 됐던 몽골엔 이제 100명이 넘는 의사들이 자국 환자들의암을 진단한다. 봉사 10주년을 앞둔 올해, 몽골을 생각하면 그의 마음은 봄꽃처럼 화사해진다. 고대 사회봉사단을 꾸린 2008년부터는 학생들과 함께소외된 이웃들을 찾아 다양한 나눔 활동을
해오고 있다. 아프리카, 피지, 러시아, 네팔, 캄보디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제자들과 함께 성장해간다.
“현미경사진이 그렇듯, 봉사에도 스토리텔링이 필요해요. 봉사할 곳을
사전에 답사해서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게 합니다. 다녀와선 어떤 봉사를 어떻게 해나갈지 토론을 통해 정하도록 해요. 돌아오면 보고서와 동영상 등으로 활동기록을 남기게 하고요. 이야기가 있는 봉사가 진짜 봉사예요.”
그가 걷는 ‘샛길’은 사진과 봉사만이 아니다. 그는 대한민국 최고의 의사 검객으로 꼽힌다. 본과 2학년에재학 중이던 1977년 의대 최초로 검도회를 창립해, 40년간 최강의 검도회로 자리 잡게 한 장본인이 바로 그다. 한국의사검도회도,전국의대생검도대회도 그가 만들었다. 현재 공인 7 단이다.
검도로 얻은 집중력이, 현미경 앞에서 고스란히 발현됨은 물론이다.
“곧 책을 하나 쓸 거예요. 사진으로 풀어가는 미라 책입니다. 공동으로 집필할 저자가 하나 있는데, 초등학교 6 학년 때 내가 보내준 미라 책을 읽고 2 년 전 고대 사학과에 입학한 학생이에요. <과학소년>이란 잡지에서 전국 어린이들에게 책을 보내주는 캠페인이있었거든요. 세월이 10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이 친구가 그 책을 달달 외우더라고요. 미라로 인연이 닿은 그 학생과 함께 미라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나갈 생각이에요.”
그의 눈이 다시 반짝거린다. 병든 세포에서 예쁜 꽃을 찾아낼 때의 바로 그 눈빛이다. 오래 전에 숨을 다한 미라들에서 그는 또 어떤 이야기꽃을 피워 올릴까. 봄은 이미 와있고, 꽃은 이제 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