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섭 대표(화학 64), 김성길 회장(화학 64), 60년 우정이 만든 나눔의 선순환
  • 작성일 2024.09.06
  • 작성자 고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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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or Interview
화학과 생활비 장학기금 '운성장학금'
김운섭 대표(화학 64)
·김성길 회장(화학 64)
장학금 수혜자에서 기부자로,
60년 우정이 만든 나눔의 선순환

어깨동무를 한 김운섭, 김성길 회장

지난 6월, 고려대 총장실에서는 김성길·김운섭 교우의 장학금 기부식이 열렸다. 화학과 64학번 동기인 두 사람은 각각 2억 원, 1억 원을 출연해 총 3억 원의 장학금을 조성, 화학과 후배들을 위해 쾌척했으며 향후 각각 1억 원씩을 더해 총 5억 원 규모의 장학기금을 만들 계획이다.

 

'운성장학금'의 탄생

"우리가 대학생이던 60년대는 나라 전체가 가난했어요. 저는 전기도 안 들어오던 경남 하동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 와 지내려니 더 힘들었지요. 교복 하나를 4년 내내 입고 다닐 정도였으니까요. 그런 환경에서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건 화학과 초창기 졸업 선배들이 만들어 준 장학금 덕분이었어요. 그 고마움을 늘 마음에 품고 살면서 '언젠가 여유가 되면 꼭 갚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운섭이가 기부 제안을 해 흔쾌히 응했습니다."(김성길)

"저도 4년 내내 장학금을 받았어요. 화학과 1등에게 주어지는 등록금 면제 혜택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졸업 때까지 과 수석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졸업 때는 이과대학 전체 수석을 차지해 이사장상도 받았고요. 장학금이 공부의 큰 동력이 된 셈이죠."(김운섭)

졸업 후 화학업계에 진출해 기업인으로 성공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성취가 장학금에서 비롯된 것임을 잊지 않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대학생에게 장학금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잘 알기에, 기부에 뜻을 모은 후에는 지체하지 않았다. 기업인들 특유의 추진력이 유감없이 발휘됐고, 각자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딴 '운성장학금'은 그렇게 탄생했다.

인터뷰 중인 김운섭 대표

화학인이자 기업인으로, 같은 길을 걸으며 쌓은 우정

화학과 64학번 동기로 만났으니 그들이 친구가 된 지는 올해로 60년째다. 재학 시절엔 군입대 시기가 달라 캠퍼스에서 함께 보낸 시간은 많지 않았다. 그보다는 화학업계에서 일하며 접점이 많아 가까워진 경우다.

당시의 대학 생활은 어땠는지 묻자 김운섭 교우는 "대학교 1, 2학년 때는 전국적으로 한일회담 반대 시위가 격렬해 학교는 늘 어수선했다"며 "캠퍼스의 낭만 같은 건 없었다"고 한다.

"동아리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지도 않았고, 할 여유도 없었어요. 그래도 학교 생활을 돌아보면 고연전은 기억에 남아요. 그때 고연전은 (지금은 없어진) 장충동 서울운동장에서 했어요. 열심히 응원하고, 끝나면 무교동 낙지집으로 몰려 가 선배들이 사 주는 막걸리를 마시곤 했죠. 왁자지껄 재밌었지.(웃음)"

김운섭 교우의 표현을 빌리면 '요즘 고등학생과 다를 바 없는' 대학 생활을 마치고 두 사람은 모두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성적이 좋았던 김운섭 교우는 학부 졸업생으로는 이례적으로 KIST 연구원이 되었다. 이후 기업으로 스카우트돼 한농포리머, 동부정밀화학, 동부아데카, 대흥화학 대표이사를 지냈다.

2년 전 은퇴하기까지 그는 오랜 기간 현장을 지키며 수입에 의존하던 여러 의약품, 농약 등의 국산화를 주도하는 등 국내 화학업계의 발전을 이끌었다.

한편 김성길 교우는 졸업 후 국도화학에 입사해 10년간 일하다 39세에 창업했다. 타고난 성실함과 강직함을 바탕으로 꾸준히 회사를 성장시켜 지금은 화학 소재 분야의 건실한 중견 기업으로 만들었다. 40년간 경영 일선을 지켜 온 그 역시 지난해 아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었다고 한다.

인터뷰 중인 김성길 회장

기부를 통해 마음의 빚 갚은 느낌

평생을 '화학인'으로 더없이 열정적으로 현장을 누볐던 두 사람은 이제야 온전히 건강을 돌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김성길 교우는 "기부를 통해 마음의 빚까지 갚아 아주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저는 학교에 대한 고마움이 커요. 정말 가난한 학생이었는데, 대학 생활을 하며 빈부격차로 인한 차별이나 소외감을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생각해 보면 그게 고대정신인 것 같아요. 저희의 기부가 그 여정에 도움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김운섭 교우도 "후배들이 생활비 걱정 없이 학업에 열중할 수 있게 해 주고 싶었다"며 "그들이 사회에 나와 우리처럼 또 누군가를 돕는 선순환이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것이 그가 친구와 함께 장학금을 만든 진짜 이유다.

"줄 수 있는 삶에 감사하면서 산다"는 팔순의 두 교우는 "감사한 마음으로 살다 보면 계속 감사할 일이 생긴다"며 웃었다. 맑은 미소가 인상적인 두 노신사에게 오늘 큰 가르침을 얻었다. 이처럼 지혜롭게 삶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면, 이런 깨달음을 함께 나눌 친구가 있다면 '나이 듦'도 꽤 멋진 일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