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상품으로 떠오른 2010년대, 그 인기는 남미와 유럽의 일부 마니아층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케이팝 아이돌의 영향력은 날로 커져, 특정 지역을 넘어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음악 방송을 제작하는 프로듀서였던 최재윤 교우는 일찍이 그 열기를 포착하고 팬 중심의 케이팝 콘텐츠 유통 기업 헬로82를 설립했다. 그리고 미국 진출을 헬로82와 함께한 보이 그룹 에이티즈(ATEEZ)는 정교한 현지 전략으로 글로벌 케이팝 유통 기업 '빌보드200' 차트에서 1위를 달성, 이후 미국 3대 페스티벌인 '코첼라' 무대에 당당히 섰다.
최근 헬로82가 유통을 맡은 팀들이 연달아 빌보드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유럽으로 사업을 확장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또 다른 근황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헬로82는 미국 기업으로서 주로 미국과 유럽 시장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고 있어요. 미국은 더 사이즈를 키우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고, 유럽도 차차 넓혀 가려고 하는 중입니다.
음악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가지고 계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들었어요. 6살 때부터 거의 영미권 음악을 듣고 자라다가 수험생 시절, 당시 강남역 '타워레코드'에서 우연히 접한 루이스 미겔(Luis Miguel) 음악에 빠졌어요. 더 알고 싶어서 스페인어와 스페인 문학을 전공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서어서문학 전공으로 고려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KUTV(고려대학교 교육TV 방송국)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큐멘터리도 찍고, 뮤직비디오도 만들었는데, 그보다 같이 많이 놀았어요. 당시, 방송국 취업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은 '언론고시'라는 시험을 준비했는데, KUTV는 그보다 훨씬 '크리에이티브'한 영상에 깊게 꽂힌 사람들이 모인 곳이었어요. 저에게는 KUTV 활동이 자연스럽게 음악과 영상, 미디어 등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아마도 고대에서 가장 많은(혹은 유명한) PD, 아나운서, 감독, 프로듀서 등을 배출한 곳일 거예요.
"전 세계에 못할 일이란 건 없어요.
요즘처럼 한국인이라는 것이 유례 없이 좋은 조건인 적은 없어요.
일단 해 보면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첫 직장이었던 엠넷과 이후 재직한 딩고스튜디오에서 제작한 프로그램들(〈오프 더 레코드, 효리〉, 〈2NE1 TV〉, 〈일반인들의 소름돋는 라이브〉, 〈세로라이브〉 등)이 모두 큰 호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엠넷에서 10년간 음악 프로듀서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다가, 2011년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파견 근무를 가게 됐어요. 당시는 온라인 기반의 콘텐츠/미디어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던 때여서, 제 커리어도 'TV'에서 '뉴미디어'로 옮겨지게 됐죠. '뉴미디어'는 바이럴리티*가 핵심인 걸 알게 됐고요. 시청자와 친구, 즉 또래 사이의 공감대를 건드릴 수 있는 콘텐츠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귀국 후 스타트업 회사로 옮겨 뉴미디어 콘텐츠를 제작하는 딩고스튜디오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바이럴리티(virality): 콘텐츠가 인터넷에서 빠르게 확산되는 현상
이후 케이팝 콘텐츠 유통 기업 '헬로82'라는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 엠넷 프로듀서로서 미국에 간 2011년은 싸이의 〈강남스타일〉(2012)도 발표되기 전이었는데, 이미 유튜브의 영향으로 SM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의 영상이 서서히 바이럴이 되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미국에 케이팝을 중심으로 사업하는 곳이 없다고 판단해 공략하기로 했습니다. 열 명도 안 되는 팀으로 엠넷 아메리카를 케이팝 중심으로 만들고, 한류 컨벤션 케이콘(KCON)을 만들었죠. 하지만 너무 일렀던 것 같아요. 다시 제대로 해 보고 싶어서 잠시 한국으로 돌아갔어요. 딩고스튜디오 역시 해외 사업에 중점을 두고 시작했는데, 2-3년이 지나자 '해외 사업을 하려면 해외만 하는 게 맞다, 굳이 한국과 미국을 연결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2018년 초 미국은 빅뱅 이후 BTS가 성장하고 있는데 2011년이나 그때나 케이팝을 전문으로 사업하는 곳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미국에서 헬로82를 창업하기로 했죠. 82는 한국의 국가번호에서 따왔어요.
에이티즈 앨범과 팝업스토어를 홍보하는 뉴욕 타임스퀘어의 전광판빌보드
대형 기획사를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에이티즈를 '빌보드 200' 정상에 올려놓으셨습니다. 이러한 성공을 위해 헬로82는 어떤 전략을 사용했나요?
대형 기획사와 음반사라는 개념은 모두 한국 내에서 생겨난 것들이에요. 미국이나 해외 시장은 그러한 개념이 통하지 않고, 해외 팬들 역시 그게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한국과 달리 해외에서는 케이팝을 좋아하면 케이팝 가수들을 모두 좋아하는 성향이 있어요. 그러한 특성을 이해하고 현지의 팬들이 원하는 것을 'serving'한다는 관점으로 사업을 전개하고 있어요. 계속 성장해 나가는 케이팝 팬들만을 위해 최적화된 방식으로 사업을 하는 곳은 저희밖에 없으니 그 점이 팬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케이팝의 산업 동향은 어떤가요? 새롭게 추진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직 미국은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고 있어요. 그만큼 시장은 점점 더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메가트렌드는 점점 더 작아지고 수많은 서브컬처, 니치의 합집합이 끝없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온라인과 바이럴리티에 거의 네이티브라고 할 수 있는 케이팝에게 시장의 기회는 계속 많아질 것입니다.
헬로82의 향후 계획이나 목표를 알려 주신다면요?
지금 헬로82는 '컨텐츠 수출 플랫폼'의 역할을 하면서, 미국과 유럽에서 케이팝의 레이블·유통·머천다이즈·이벤트 등을 수직계열화한 사업인데, 앞으로 케이팝 팬들을 중심으로 펼칠 수 있는 다른 영역들을 최대한 넓게 확장해 보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 케이팝 밖에서 그냥 '팬 중심의 컬처 사업'을 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멕시코 음악이 지금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해서, 멕시코 음악 기반의 컬처 사업을 하는 '헬로52'가 탄생할 수도 있어요. 멕시코의 국가번호인 52를 이용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