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철학과에서 보낸 4년은 알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고통스럽지만 제 자신을 완전하게 바꾼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생각의 틀을 새롭게 형성하도록 도와준 모교에 대한 빚진 마음으로 이번 기부를 결심했습니다. 고려대 교우인 제 아들과 며느리 역시 성장시켜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있고요."
'고철'과 함께 알에서 깨어나다
전영민 기부자는 1985년 고려대 철학과, '고철'에 입학했다. 얕은 지식보다는 지식의 틀을 세우겠다는 포부로 철학과에 왔지만, 입학하자마자 그동안 쌓아온 생각의 틀 전체가 흔들리는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군부독재 시기였죠. 제 첫 기억은 당시 제자들을 지키기 위해 자진 사퇴를 선택하신 김준엽 총장님을 지키기 위한 퇴진 반대 시위였습니다. 당시는 대학 내에서 공유할 수 있는 지식과 대학 바깥에서 얻는 지식의 격차가 컸고, 그래서 전혀 몰랐던 진실들을 맞닥뜨리며 내적 파열음이 컸습니다. 강의실보다는 집회에서 더 시간을 보냈지만, 선후배들과 토론하고, 또 도올 김용옥 교수님, 윤사순, 김충렬 교수님 등 최고의 학자들을 스승으로 모시며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큰 선물입니다."
그는 고려대에서의 4년을 "다시 태어나는 느낌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따뜻한 미소 뒤에 예리하게 반짝이는 그의 눈빛처럼 단단한 사유 세계도 고려대에서 다졌다.
"강요된 내용들을 진실로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모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놓고, 다시 생각하고 또 분석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죠. 대단한 석학, 높은 사람들의 말이라도 진짜 옳은지에 대해서 나 스스로 다시 반추하는 습관, 소위 말하는 생각의 방법론을 형성했습니다."
그룹의 인재경영전문가, 그리고 벤처투자 책임자로
고려대를 졸업하고 롯데그룹 입사 후, 인재 경영에 입문한 이후로 한우물을 팠다. 평생의 업이 되려면 좀 더 전문적인 배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고려대 경영학과 대학원에 입학, 주경야독으로 인사조직 석사과정을 밟았다. 이후 무려 21년간 그룹본부에서 인사 업무를 담당했다. 이어 롯데인재개발원장으로 재직하며 인재 육성에 힘썼다.
오래 일한 후 그의 다음은 놀랍게도 롯데벤처스의 대표, 그룹 전체의 스타트업 투자를 지휘하는 자리였다.
"인사전문가 커리어로 벤처투자회사의 수장이 되는 것은 흔하진 않습니다. 다만 인사를 책임질 때도,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도, 저는 일관되게 미래를 예측하고 그 미래에 대응하는 것을 평생의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인재를 채용할 때도 3~5년 후를 내다보며 이 사람을 잘 성장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스타트업 또한 비즈니스 모델뿐 아니라 이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수년 후 성장이 핵심입니다. '미래를 예측하며 사람을 키운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것이지요."

▲ 후배들에게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전 교우. 인터뷰 당시 읽고 있던 책에 남겨진 빼곡한 밑줄과 메모
그가 고려대 인문관에 투자하는 이유
기부는 가장 사회적인 투자라는 말처럼 그의 인문관 건립을 위한 기부는 투자와도 관련이 있는 것일까.
"미국에서 지금 가장 유명한 투자자 피터 틸, 가장 뜨거운 기업 팔란티어의 알렉스 카프, 링크드인을 만든 리드 호프만.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철학을 전공했다는 것입니다.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이지만, 그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문제를 찾는 것이지요. 인문학은 그 문제를 찾는 학문입니다. 사람, 역사, 철학을 이해하지 않고는 문제를 찾을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미래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은 '기술 이해와 인문학적 사고'라고 생각해요. 기술 중심 사회로 갈수록 인문학적 사고는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어떤 미래가 인류에게 펼쳐질지, AI를 대체할 무엇이 등장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어떤 미래가 당도하든지, 변화에 굴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문제를 찾고 위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고려대가 계속 키워내기를, 그리고 인문관이 그 중심이 되길 바랍니다. 인문관이 문제를 찾는 사람, 위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키워내는 본부가 된다면, 미래를 위한 가장 좋은 투자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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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국내 최고의 인사전문가
전영민 교우의 후배들을 위한 조언
01
인사전문가로서의 원칙 하나, 업무적합성
개인의 역량이 아무리 탁월해도 맡은 업무 분야에서 요구하는 역량과 다르다면 서로에게 비극입니다. 직원도, 팀도, 회사도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도록 교통 정리를 잘 해주는 것이 인사팀의 책임이죠. 그런데 대학을 졸업한 성인이어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역량과 적성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02
인사전문가로서의 원칙 둘, 꼰대인가 아닌가
제가 생각하는 꼰대의 정의는 나이가 많든지 적든지 관계없이 '배우는 것을 멈춘 사람'입니다. 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 배우는 사람, 배우는 걸 좋아하고 계속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에요. 그래서 학습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동력을 갖춘 친구들을 발굴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인사라고 생각하고 실천해 왔습니다.
03
스타트업 투자자의 원칙, 사업도 결국 사람이다
어떤 회사든 비즈니스 모델과 보유 기술의 중요성이 50%라면, 나머지 절반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자동차도 운전자가 차를 엉망으로 운전하면 아무 소용이 없죠. 창업자의 리더십도 그렇습니다. 몇 명이서 오순도순 시작할 때와, 나중에 이 비즈니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해서 100명이 넘는 직원들을 데리고 큰 회사를 이끌어갈 때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거든요. 특히 공동 창업자를 잘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창업자의 인성, 공동창업자 간의 케미스트리 등이요.
04
예측 불가한 미래를 대응하라
20년 전 스마트폰의 출시에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고, 10년 전 AI의 등장에 또 충격을 받았습니다. AI 이후에는 또 다른 무엇이 등장해서 우리의 일하는 방식과 환경, 세계의 트렌드를 다 바꿔놓겠죠. 지금 당장 AI를 잘 다루는 사람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새로운 것이 갑자기 등장했을 때에도 그에 굴하지 않고 빠르게 학습하여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입니다.
05
고려대 후배들을 향한 당부, 여전히 독서가 정답인 이유
요즘은 유튜브를 통한 학습이 보편적입니다. 그런데 유튜브의 한계는 가르치는 사람이 템포를 결정한다는 것이에요. 책은요? 읽은 사람이, 곧 내가 템포를 결정할 수 있죠.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데는 책이 여전히 최고일 거라고 믿습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교수님과 강의실을 떠나고 조별 과제와 토론을 멈추게 됩니다. 그때는 어떻게 배움과 성장을 이어 나갈까요? 세상을 배우는 데는 책이 가장 중요하죠.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심지어 괴짜 일론 머스크나 제프 베이조스도 모두 책벌레입니다. 대학에 있는 지금, 책을 가까이하시고 계속 책을 읽는 습관을 들이세요. 졸업 후에도 그 습관이 여러분을 버틸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