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수 원장(신문방송학 82), K-브랜드의 개척부터 성장까지, 세계 무대의 최전선을 달리다
  • 작성일 2026.01.27.
  • 작성자 고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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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수 원장
뉴욕한국문화원 원장
(신문방송학 82)
K-브랜드의 개척부터 성장까지,
세계 무대의 최전선을 달리다


뉴욕 맨해튼 중심에 위치한 뉴욕한국문화원 신청사 앞에 선 김천수 원장

전 세계의 문화와 자본이 맹렬하게 교차하는 뉴욕 맨해튼의 중심에 뉴욕한국문화원(Korean Cultural Center New York)의 새로운 독립청사가 문을 열었다. 9층 규모의 웅장하고 미려한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한 이곳은 뉴욕을 찾는 세계인들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에게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의 문화가 전 세계인과 만나는 K-컬처의 랜드마크, 뉴욕한국문화원을 이끄는 이는 바로 김천수 원장이다.


대한민국 브랜드 성장의 첨병이자 산 증인

김천수 원장은 기업들이 'Korea'를 드러내기 꺼리던 1990년대부터, 세계인이 먼저 찾는 K-컬처의 시대가 무르익은 오늘까지 30년 이상 세계 무대를 누비며 치열하게 한국과 한국 기업의 브랜드를 알려왔다. 1987년 1월 제일기획에 입사하여 국내 A.E.로 활동하던 중 1995년 LA지사장으로 파견된 것을 시작으로, 글로벌 부문장을 맡아 해외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브랜딩을 책임졌고, CJ라이브시티 대표로서 K-콘텐츠의 산업화를 주도했다. 글로벌 광고인이자 문화산업 전문가로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 브랜드의 성장을 위해 가장 가까이서, 치열하게 일해온 그가 지금도 세계의 심장 뉴욕에서 대한민국을 알리는 일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가 싹을 틔우고 뿌리를 내려 결실을 맺는 긴 분투 가운데, 그는 세계 시장의 최전선에 선 첨병으로 새로운 도전을 묵묵히 이어왔다.


기자의 꿈, 그리고 "빨래엔 피죤"

대학 입시를 앞둔 고3 시절, 반장인 그를 가까이 지켜보시던 담임 선생님이, '너는 꼭 기자가 되는 것이 좋겠다'며 강력 추천하신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했다. 격동의 시기에 대학 생활을 했지만 이때 만나고 체득한 고대인들의 공동체 의식과 신뢰는 평생의 자산이 되었다. 오로지 기자를 목표로 공부하던 그는 졸업 전 가을에 치러진 '석간 신문사' 기자 시험에 낙방 후 이듬해 봄에 있을 '조간 신문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가장 친한 친구가 '언론사 시험과 과목이 같다'며 끌고 간 곳은 광고 대행사 제일기획 공채 시험장. 친구의 강권으로 응시한 시험에 덜컥 합격하며 뜻하지 않게 광고인의 삶을 시작했다.

얼떨결에 입사한 제일기획 A.E.(Account Executive, 대행사의 기획직)였지만 광고와 마케팅을 배울수록 재미를 느꼈다. 마케팅 해외 원서를 찾아 읽고, 매달 발행되는 사보에 미국의 광고 잡지 AD-AGE의 기사를 번역해서 싣기도 했다. 마침 친한 선배가 근처 다른 기업의 홍보실에서 일하고 있어서 매달 회사의 사보를 가져다주었는데 1년이 넘었을 때쯤 그곳에서 연락이 왔다. 꾸준히 사보를 전달하는 것을 본 홍보실장이 "그 후배에게 한번 기회를 줘 보자"며 광고 의뢰를 한 것이다. 3년차 직원이 광고주를 영입하게 된 셈이다. 한국에서 처음 섬유유연제를 출시한 이 기업을 위해 떨리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한 광고가 바로 당시 세탁 문화를 바꾸다시피 한 "빨래엔 피죤" 캠페인이다. 김천수 원장은 그때 찾아온 도전의 기회가 그의 인생에 하나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기억한다.

몇 년 후, 삼성그룹이 글로벌 브랜딩을 강화하기로 선언하자 회사에서는 사보에 꾸준히 미국 광고계의 근황을 번역하여 소개하던 그를 LA지사장으로 발령했다. 갓 과장을 달고 미국으로 날아간 그는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밤낮없이 일하며 새로운 사업의 기틀을 세웠다.

책을 읽는 김천수 원장

글로벌 광고인에서 공공외교의 최전선으로

어느덧 회사는 물론 국내 광고업계에서 손꼽히는 국제통이 된 그는 LA와 뉴욕을 오가며 발로 뛰었고 제일기획 미주 법인장과 글로벌 부문 부사장을 역임했다. 훌쩍 성장한 대한민국의 위상처럼 전 세계에 흩어진 51개 해외 지법인과 7개 자회사 등 해외사업 전반의 운영을 총괄했고 삼성전자가 글로벌 톱 티어 브랜드로 도약하는 과정을 현장에서 지원했다.

이후에는 CJ라이브시티의 대표이사로 'K-콘텐츠를 활용한 새로운 엔터테인먼트 경험을 제공하는 회사'라는 비전을 설정하고 테마파크, 대형 공연장, 호텔 개발 등에 대한 사업 전략과 사업 계획 등 마스터 플랜을 지휘하며 K-컬처의 미래에 대한 더 큰 그림을 그렸다. 세계 아레나(대형 실내 공연장) 비즈니스의 가장 큰 플레이어인 AEG(Anschutz Entertainment Group)와 조인트 벤처도 설립했다. 민간에서 쉼없이 달려오며 정점을 찍은 그는 2023년 3월, 뉴욕한국문화원장이라는 공직을 맡게 되었다. 이제는 기업인이 아닌 문화외교관으로 다시 한국 문화 전파라는 거대한 프로젝트의 키를 잡게 된 것. 김 원장은 부임하자마자 오랜 기간 공사 진행에 어려움을 겪던 뉴욕한국문화원 건축 공사 완공을 이끌어냈는데, 평생 뉴욕을 오가며 쌓은 관계망과 CJ라이브시티에서 부동산 개발과 건축 등 하드웨어를 다루며 익힌 경험이 절묘하게 쓰인 셈이다.


한글벽 앞 난간에 기댄 김천수 원장

뉴욕 한가운데 높이 세운 한글벽

뉴욕한국문화원은 본래 뉴욕 한국 총영사관 소속으로 1979년부터 운영되어왔다. 2024년 2월 선보인 첫 독립청사는 총 9층 규모(지하 2층, 지상 7층)로, 지하에 200석 규모의 공연장, 1층에 한국의 문화를 역동적으로 담은 미디어월, 2층에 전시장이 있고, 전시장 외부에는 담양의 정원 소쇄원 애양단을 모티브로 한 정원을 조성했다. 이는 뉴욕 최초의 한국식 전통정원이다. 그 외에도 3층에는 한글 도서 1만여 권을 소장한 도서실, 4층에는 한국 전통 가옥 방식의 마루 및 사랑방, 부엌, 도서관 등 한국 문화의 정취에 빠져들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정성껏 꾸몄다.

특히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높이 22미터, 폭 8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설치 미술 '한글벽'이다. 세계적인 설치 미술가인 강익중 작가가 이끈 이 작품은 전 세계 50여 개국의 1천 명이 쓴 한글 문장을 추려서 2만 개의 타일로 만든 것. 압도적인 규모와 매혹적인 아름다움이 모두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개관하며 그가 가장 힘쓴 부분은 한국 문화의 독창성, 그중에서도 '한글'의 탁월함과 미학을 전하는 것이었다. "한국은 오랫동안 중국, 일본과 한자 문화권으로 묶이면서 독창성을 인정받지 못한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한국 문화만의 독창성과 독특함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지요. 저는 특히 한글을 알리고 싶었어요. 한글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문자 체계잖아요. 더욱이 한글에는 민주적, 인본주의적인 철학과 정신, 그리고 그 안에 음과 양의 조화까지 담겨 있지요. 이러한 탁월함과 독창성이 대한민국을 대한민국답게 하고, K-컬처가 존재할 수 있게 만드는 핵심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글을 이용하여 세계인의 가슴에 남을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던 그의 열망은 마침 뉴욕에 거주하는 강익중 작가를 만나면서 현실화되었다.

2023년 뉴욕공립도서관 백남준 다큐멘터리 상영회 참석 모습

▲ 2023년 뉴욕공립도서관 백남준 다큐멘터리 상영회에서

2025년 한글날 열린 강익중 작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한글트럭 피날레 현장

▼ 2025년 한글날 열린 강익중 작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한글트럭 피날레'에서

"한글에 대한 제 고민에 강 작가님이 아이디어를 주셨고 이내 의기투합을 했죠. 그 벽을 어떻게 채울지, 어떤 의미를 담을지,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 매번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했습니다. 2023년 5월에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한글벽이 완성된 건 2024년 9월입니다. 1년 반 가까이 걸렸죠. 한글벽 제작에 대한 강일중 작가님의 리더십과 헌신에 지금도 감사합니다. 덕분에 뉴요커와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한글의 아름다움과 독창성을 예술의 옷을 입혀 전달할 수 있게 되었죠. "

그가 바라는 뉴욕한국문화원은 단지 문화를 전시하는 곳에 머물지 않는다. 이곳을 통해 뉴욕과 전 세계의 예술 기관, 브랜드, 미디어와 협업하며 한국 문화를 더욱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세계인이 한국 문화를 소비하고 즐기게 만드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뉴욕 거리를 걷고 있는 김천수 원장의 모습

과정, 그리고 걷기

광고 산업, 콘텐츠 비즈니스는 언제나 시대를 앞서 걸으며 방향을 잡아야 하기에 예리한 인사이트가 특히 중요한 분야다. 치열한 국제 무대에서 트렌드를 한두 걸음 이상 앞서 걸으며 오래 일해온 그에게 비결을 묻자, 그는 천천히 '과정'에 대해 입을 열었다. "저는 매일이 인생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목표를 가지고 살았는지가 중요하죠. 제가 아주 존경하는 고려대 선배이자 직장 선배께서 '거저 되는 것도 없지만 억지로 되는 것도 없다'라고 하신 말씀을 간직하고 있어요. 어떤 목표든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해요. 하지만 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에요. 때가 맞아야 되고 모든 게 조화를 이루어야 결과가 만들어져요. 과정에 충실할 뿐, 목표로 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건 아니죠. 좋은 때가 오면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겠죠. 시간이 좀 늦춰졌을 뿐이지."

급변하는 현대 트렌드를 더 빨리 앞서가야 하는 숨가쁜 일과 일상 가운데 휴식을 취하거나 영감을 얻는 방법을 묻자, 그는 '걷기'라고 말한다.

"뉴욕은 걷는 도시예요. 미국에서 거의 유일하죠. 뉴욕 사람들이 다 빨리 걸어요. 저도 웬만한 거리는 그냥 걸어가려고 하는데, 뉴욕을 걷다 보면 출발지점에서 목표지점까지 가는 방법이 여러 개예요. 도로가 바둑판처럼 돼 있기 때문에 신호등이 먼저 바뀌는 곳으로만 가도 매번 다른 길이 되거든요. 그렇게 매번 다른 길로 가다 보면 분명히 오래전부터 있었을 텐데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 예상치 못한 발견이 주는 즐거움을 즐겨요.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늘 가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일부러 가보기도 하고고요. 걷기와 그를 통한 발견이 제겐 리프레시이자 영감입니다."

전 세계 콘텐츠 이용자들이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채 10년도 되지 않았다. 팬데믹으로 인해 더욱 가속화된 이 변화에서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것이 K-컬처라고 할 수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K-컬처, K-콘텐츠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과 주목을 볼 때 지금이 우리나라에게 정말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멘텀을 잘 이어가면 우리 대한민국의 국격과 위상을 더욱 높이는 데 좋은 전기가 될 것이라 믿어요."

뉴욕한국문화원은 신청사가 문을 연 이후 연간 방문객 수가 열 배 이상 늘어났으며, 방문객 대부분은 10대에서 30대의 젊은 뉴요커들이다. 개인 방문자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과 단체의 콜라보 제의도 끊이지 않는다. 그가 처음 K-브랜드를 위해 LA에 발을 내딛던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관심이다. 그 변화에 묵묵히 기여해온 그는 자신이 쌓아온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우수한 문화를 세계인의 가슴에 더욱 선명히 새기기 위해 오늘도 뉴욕 거리를 걷고 있다. 그가 뉴욕 거리에서 뜻밖의 기쁨을 발견하듯, 수많은 세계인들도 그가 펼쳐 보이는 한국 문화를 새롭게 발견하고 사랑에 빠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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