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파민은 흔히 '행복 물질'로 불리지만, 사실은 인간의 의사결정·동기·충동 조절을 정교하게 제어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20년 이상 도파민을 연구해 온 생명과학부 백자현 교수는 이 물질이 인간 행동의 핵심 열쇠임을 실험으로 증명해 왔다.
도파민은 쾌락이 아니라 '행동을 이끄는 신호'입니다
분자세포 약리학을 전공한 백 교수의 연구는 세포·분자 수준에서 도파민 신호전달이 인간의 행동과 질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둔다. "도파민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쾌감을 주는 물질이라기보다는, 보상을 학습하고 동기를 유발하게 만드는 신호입니다."
그의 연구실은 유전자 조작 동물 모델을 활용해 도파민 신호가 어떻게 작동하며, 그 과정이 중독·섭식장애·우울증 등 뇌 질환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탐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뇌 속 인슐린과 도파민의 상호작용을 규명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도파민 D2 수용체가 인슐린 수용체와 상호작용해 강박적 섭식 행동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는 뇌 연구와 대사 연구를 연결하는 새로운 발견으로, 중독·비만·대사성 뇌질환 치료 전략 개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 결과는 국제학술지 Molecular Psychiatry에 게재되었으며, 현재는 이 메커니즘을 약물 중독 연구로 확장하고 있다. "마약 중독 환자에게 효과적인 약이 거의 없습니다. 중독은 뇌 회로 자체가 변형되는 질환이기 때문에 단순한 의지로는 회복이 어렵죠. 그런데 도파민과 인슐린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중독 행동이 조절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지금은 코카인 중독 모델로도 실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백자현 교수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과학의 본질이죠
백 교수에 따르면, 연구의 매력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걸 인식하는 순간에 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것도 좋지만, 내가 뭘 모르는가를 알게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름'을 좇는 과정에서 그는 평생의 연구 주제를 만났다. 대학원 시절, 특정 뉴런의 도파민 신호가 동물의 행동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실험으로 증명했을 때, 그 복잡한 연결 속에 인간의 행동과 질환의 비밀이 숨어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프랑스 파리 6대학과 CNRS 분자세포유전학 연구소(IGBMC)에서 박사 및 박사후 과정을 밟으며 세계 각국 연구자들과 경쟁하고 협력하는 환경 속에서 '과학은 국경을 넘어 인류 전체에 기여하는 보편적 학문'임을 체감했다. "40여 개국의 연구자들이 매주 세미나를 열고 세계적인 석학들이 함께 피드백을 주는 환경이었습니다. 준비 과정은 고됐지만 연구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죠." 그 경험은 국제적 연구 감각과 과학자로서의 소명을 확고히 해주었다. 귀국 후 그는 한국에서도 국제 수준의 연구 환경을 구축하며, 도파민 연구의 저변을 넓혀왔다.
교육자로서의 하루, 그리고 연구실의 철학
백 교수의 하루는 연구실에서 시작된다. "아침에 출근하면 연구실을 한 바퀴 돌고, 강의 준비와 학생 오피스 아워를 합니다. 랩미팅에서는 논문과 데이터를 공유하고, 연구 방향을 함께 토론하죠. 연구비 심사, 논문 리뷰, 학부생 면담까지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갑니다."
연구실은 늘 불이 켜져 있다. "학생들이 늦게까지 실험을 해요. 저는 요즘 8시쯤 나가지만, 학생들은 10시까지 남는 경우가 많죠. 연구는 타이밍이 중요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365일 늘 대기 상태입니다." 그는 연구의 기본을 정직과 협력에서 찾는다. "과학은 진실을 밝히는 작업이기에, 데이터를 정직하게 대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실패가 잦은 연구일수록 꾸준함과 신뢰가 가장 큰 자산이죠."
연구는 결국 사람의 회복을 위한 일
그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자신감이 부족하던 학생이 스스로의 주제를 찾아 성장해 갈 때다.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하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힘을 길러주는 과정이에요. 배운다는 건 나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기여하기 위한 준비라고 늘 말합니다."
백 교수는 학문적 발견이 사회 문제 해결로 이어질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중독이나 섭식장애 같은 난치성 질환의 근본 원리를 규명해, 고통을 겪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도파민과 인슐린의 상호작용을 밝힌 백자현 교수의 연구는 중독·섭식장애·우울증 등 난치성 뇌질환의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하며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과학의 궁극적인 목표를 "인간의 고통을 줄이고, 삶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라 말한다. 20여 년간 꾸준히 이어온 그의 탐구는 도파민이라는 신호를 넘어, 인간의 마음과 회복의 원리를 밝히는 과학의 여정으로 계속되고 있다.
분자신경생물학연구실 이야기
강병준(석박통합과정 14, 졸업 예정), 김보경(박사과정 16, 졸업 예정), 김민지(석박통합과정 20), 김영헌(석사과정 24), 김기연(석사과정 25)
각자의 연구 분야를 소개해 주세요.
보경 음식중독 관련 연구를 하고 있어요.
병준 스트레스 및 약물중독 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민지 도파민 수용체와 대사성 질환의 연관성을 연구합니다. 연구실의 랩장으로서 행정도 맡고 있습니다.
영헌 신경세포를 돕는 '신경교세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기연 막 입학한 신입생 막내로서 스트레스 관련 연구를 배우고 있습니다.
많은 연구실 중 이 연구실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요.
보경 학부 때 수강한 신경생물학 과목이 재밌어서 공부하는 길에 들어섰어요. 기초연구와 임상적 함의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이 연구실에서 성장하고 싶었어요.
병준 우리 랩에서 학부 연구생을 한 게 계기였어요. 어렵고 알려진 게 많이 없는 분야라 더 매력적이었죠.
민지 학부 시절 기억력 실험을 진행하면서 행동 실험의 재미를 느꼈어요. 이후 해당 분야의 논문을 찾아보다가 연구실 소속 보경 선배가 1저자로 참여한 논문을 읽게 됐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목부터 끝까지 다 읽은 논문이었어요.
영헌 뇌에 메모리가 어떻게 저장되는지 궁금했어요. 연구 방향이 명확하고, 교수님이 연구원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세요.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곳이라 느껴요.
기연 심리학 복수전공을 하면서 중독·우울증 연구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연구실의 하루는 어떤가요?
영헌 월요일에 계획을 세우고 주중엔 실험, 주말엔 데이터 정리를 합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랩미팅을 하거나 각자의 프로젝트에 대해 랩원들과 논의해요.
연구하면서 가장 보람 있던 순간은?
보경 최근 Molecular Psychiatry에 논문이 실려서 뿌듯했습니다. 국제 저명 학술지에 게재되거나 학회에서 상을 받을 때처럼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았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병준 동물 실험은 준비부터 실험 종료까지 긴 시간이 걸려요.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실패에 대한 대가가 크죠. 그래서 오랜 실험이 가설과 정확히 맞아떨어졌을 때의 보상이 큽니다.
기연 아직은 배움의 단계지만, 스스로 실험을 해낼 수 있을 때 뿌듯합니다.
뇌 연구자로서 뇌 건강을 지키는 비결이 있다면요?
민지 가볍게 스트레스를 풀 때는 보경 선배와 연구실 앞 편의점에 가서 커피와 젤리를 많이 사 먹어요. 장기적으로는 수면과 운동이 기본이죠.
기연 야식을 줄이고, 숙면 환경을 만듭니다.
백자현 교수와 분자신경생물학연구실 연구원들
연구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보경 박사 과정 초반에 첫번째로 참여했던 논문이 통과됐을 때, 와인 파티를 했던 순간이요. 어느 크리스마스에 교수님께서 정말 예쁜 케이크를 사오셔서 나눠 먹었던 일도 추억으로 남아 있어요.
교수님께 가장 크게 배우는 점은 무엇인가요?
보경 철저하고 장기적인 안목입니다. 단순한 데이터 축적을 넘어, 연구가 학문적·사회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끊임없이 성찰하도록 지도해 주세요.
병준 연구를 대하는 진심 어린 태도입니다. 성실한 실험 진행,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잘 정리하여 논문으로 발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늘 배웁니다.
민지 탐구심과 통찰력, 세심한 지도력이요!
영헌 어떤 데이터든 가볍게 넘기지 않고, 의미를 찾으려는 자세를 배웁니다.
기연 주장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제시하는 방법이요.

우리 랩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한 자랑을 해주세요.
보경 도움이 필요할 땐 주저하지 않고 서로 도와요. 협력적 분위기가 가장 큰 장점이에요.
영헌 묵묵히 연구에 몰두하면서도 작은 농담을 건네시는 선배들이 연구실 분위기를 따뜻하게 만들어주시죠.
병준 모두가 각자 맡은 주제를 끝까지 파고드는 분위기예요.
민지 대학원에 오면서 사회생활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을 걱정했는데, 오히려 작은 공동체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요. 졸업해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어요.
마지막으로, 후배 연구자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민지 꾸준히 도전하는 마음이 있다면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거예요.
보경 연구 과정은 때로 고된 여정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은 값지다고 생각합니다.
병준 진정한 열정, 그리고 동료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함께 성장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