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형외과 남혁우 원장(의학 90), 철인 닥터, 혹은 러너들의 히포크라테스
  • 작성일 2025.11.24.
  • 작성자 고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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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형외과 원장
남혁우 교우(의학 90)
철인 닥터, 혹은
러너들의 히포크라테스

남정형외과 남혁우 원장

울트라 마라톤 10회, 마라톤 풀코스 102회, 철인 3종 경기 27회 완주, 세계 메이저 마라톤 5개 도시 완주와 국제 울트라마라톤 단체전 우승까지. 입이 쩍 벌어지는 이 기록의 주인공은 전문 마라토너가 아닌 정형외과 원장이다. 더 좋은 달리기를 위해 더 잘 쉬어야 한다고 말하는 ‘철인 닥터’ 남혁우 원장을 만났다.


러너들의 성지, 남정형외과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분주한 병원. 눈에 띄는 점은, 운동복 차림에 튼튼한 근육까지 갖춘 운동 선수처럼 보이는 젊은 환자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병원 안 쪽에 다른 병원에서 볼 수 없는 첨단 러닝 폼 분석센터가 있다는 것이다.

남혁우 원장은 2005년 개원 이후 지역 환자들을 돌봐온 정형외과 전문의이자, 누구보다 달리기를 사랑하는 러너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치열한 학문 연구를 더해, 러너들이 가장 사랑하는 의사가 되었다. 세계 첨단의 러닝센터가 부럽지 않은 시설과 끊임없이 관련 논문을 읽고 작성하며 쌓은 전문 지식, 그리고 직접 체득한 러너의 경험을 통해, 러너와 스포츠 부상 환자를 치료하고 부상 없이 달리는 방법을 알려 준다. 병원에는 달리기 환자를 진단하고 분석하기 위해 InBody, static·dynamic-Footscan, exbody, MotionMetrix* 등 여러 가지 장비와 시스템을 구축하고 정형외과 전문의가 직접 진료하고 분석해 주기 때문 에 소문을 듣고 지방뿐 아니라 멀리 해외에서도 러너들이 예약 방문하고 있다.

글쓰기를 사랑했던 부친을 닮아 글을 쓰는 일에도 열심인 그는 최근 가장 현실 적이고 안전한 마라톤 입문서 《마라톤, 저 뛰어도 될까요?》(매일경제신문사)를 펴냈다. 러너 6,000여 명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마라톤에 필요한 실질적 체력 훈련 정보와 마음까지 건강하게 단련하는 노하우를 집약한 이 책은, 마라톤을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친절한 길잡이가 되어 준다.


러닝 머신 위 남혁우 원장

삶의 위기에서 만난 마라톤

삶의 위기에서 만난 마라톤

아마추어 마라토너로서는 범접하기 어려운 어마어마한 달리기 경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가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불과 13년 전 일이다.

"명색이 정형외과 의사인데, 목 디스크가 심하게 튀어나와 통증 때문에 삶 전체가 크게 흔들린 적이 있어요. 수술을 집도하려 메스를 드는 것, 진료 차트를 작성하기 위해 자판 을 두드리는 것마저 고통스러웠습니다. 의사로서의 정체성 마저 흔들리며 큰 좌절에 빠졌을 때, 역시 의사이자 고려대 교우인 큰형(남현우 여의도 삼성 마취통증의학과 원장, 의학 81)이 달리기를 해보라고 제안해 주셨어요. 그때까지 저는 아이스하키나 골프와 같은 비대칭 운동을 즐겨 했는데, 형의 제안에 따라 달리기로 재활의 첫걸음을 시작했습니다."

일단 나가서 한강에서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10분 걷고 10분 뛰기부터 시작했다. 극심한 통증을 피하기 위해 수영 과 자전거, 근력 운동으로 충격을 분산했고, 몸의 반응을 기록하며 하루하루 달리는 시간들을 쌓아갔다. "제가 의사지만, 진짜 기적적으로 좋아지는 것이 느껴지면 서 달리기의 신비에 매료되었어요. 과학적으로도 달리기를 하면 척추기립근이 건강해지고 코어 근육이 발달해요. 특히 혈류가 좋아져 디스크 치료 효과가 있습니다. 논문을 찾으니 역시 이런 데이터가 많이 있었죠."

'10분 뛰기'로 시작한 달리기가 점점 늘어 10km 코스, 하프 코스를 거쳐 42.195km를 달리는 풀코스 마라톤 완주로 이어졌고, 철인 3종 경기와 트레일 러닝, 울트라마라톤으로 까지 번졌다. 그는 최근 101번째 마라톤 완주를 달성했다. "이 경험은 제 진료 철학이 되었습니다. 스포츠 부상 환자들 이 많이 오시는데, 환자들에게 기록과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복과 지속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오늘의 한계를 무리 해서 넘는 것보다, 내일도 달릴 수 있는 몸과 마음을 지켜 내는 것, 그것이 결국 삶을 단단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환자에게 늘 말합니다. 오늘 한계를 넘는 것보다 내일도 달릴 수 있는 몸과 마음을 지키는 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 회복과 지속, 그것이 진짜 달리기의 철학입니다.”


병원 내부에서 포즈를 취하는 남 원장

고대 의대, 그리고 ‘달리는 의사들’

고려대 시절을 생각하면 '낭만'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가장 선명한 기억은 단연 고연전. 1994년 MBC배 농구 대회에서 현주엽 선수가 덩크슛을 꽂아 넣으며 서장훈 선수 가 이끄는 연세대를 압도하던 장면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열띤 응원 후 뒤풀이 술자리에서 친구들과 취기가 오른 채 '뱃노래'를 부르던 순간도 오래 간직하고픈 기억이다.

"고려대에서의 시간은 저에게 거품을 빼고, 진중하게 사람 들과 어울리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곳에서 서로를 끌어주고 버텨주는 끈끈한 동료애를 배웠습니다. 지금 제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방식의 뿌리는 그 시절 고려대에 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려대 의과대학에는 2015년 시작된 우리나라 최초의 의과대학 마라톤 동아리 '달리는 의사들 KUMA'가 있다. KUMA는 졸업생과 재학생이 매달, 매주 시간을 정해 함께 달리는 인기 동아리로, 현재 회원이 100명에 달한다. KUMA의 졸업생 멤버들은 제주도 국제 울트라마라톤 단체전에서 우승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해외마라톤에서 뛰는 모습

인생 최고의 메달

아들이 결승선에서 불러준 목소리, 인생 최고의 메달

뉴욕, 보스턴, 시카고, 런던, 시드니까지 전 세계 메이저 마라톤 대회를 섭렵한 그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달리기 로 꼽는 기억은 무엇일까.

"2014년, 아들과 함께한 춘천 마라톤입니다. 저는 풀코스를 뛰고, 당시 10살이던 아들은 씩씩하게 10km 코스에 참가했 죠. 코스가 달라 같이 뛰지는 못했지만, 뛰는 내내 '아들이 혼자 잘 달리고 있을까?', '결승선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까?' 하는 생각으로 가슴이 벅찼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마라톤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결승선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주는 설렘, 그 목소리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이 그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 아들이 크게 '아빠!'를 외치 던 소리가 제게는 세상의 어떤 메달보다 값진 포상이었어 요. 그 한마디가 지금도 제 가슴 속 깊은 곳에 남아, 달리기 를 이어갈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잘 쉬는 러너가 현명한 러너입니다"

남혁우 원장이 마라톤을 하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은 회복탄력성(resilience)의 중요성이다. 흔히들 훈련은 강하 게, 더 많이, 더 치열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강·약·휴(休)가 균형 있게 어우러져야 오래 달릴 수 있다고. "달리기는 충격이 큰 운동입니다. 체중이 그대로 관절과 근육에 반복해서 내려앉는 과정이기 때문에, 반드시 회복 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충격 운동과 비충격 운동의 균형입니다. 달린 다음에는 수영, 자전거, 근력 강화 운동처럼 충격을 줄이면서 회복과 보완이 가능한 운동으로 대체해 주어야 몸이 망가지지 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러닝 붐이 일어나면서, 초보 러너들이 흔히 하는 실수인 마일리지 강박, 즉 매일 달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몸을 해쳐 내원하는 환자들을 많이 본다. 현명한 러너는 달리는 시간만큼이나 쉬는 시간을 존중하는 사람이라고 남 원장은 거듭 강조한다.

"저 역시, 마라톤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기록 단축하 는 법'이 아니라 '내 몸의 회복 신호에 귀 기울이는 법입니다. 달리는 기쁨을 오래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복이 선행되 어야 합니다. 적절한 휴식과 크로스 트레이닝,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완전한 휴식까지도 러닝 훈련의 일부입니다. 몸이 회복하는 과정에서 근육은 더 단단해지고, 부상 위험이 줄어들며, 정신력 역시 다시 충전됩니다. 회복탄력성을 갖춘 러너만이 꾸준히 달릴 수 있고, 또 그 과정 속에서 진정한 의미의 성장과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한때 극한의 도전으로 불리던 마라톤, 하지만 이제 마라톤 은 특별한 소수만의 전문 스포츠가 아니라, 일상 속 달리기 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에 있는 생활 운동이 되었다. 달리기 를 통해 누구나 건강을 지키고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있기를. 러너이자 의사인 그의 간절한 바람이다.

러닝, 어디까지 해봤니?!
"남혁우 원장의 마라톤 이야기"

고려대의 젊은 러너들에게

젊을 때는 누구나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달리기를 잘한다는 것은 단순히 속도가 빠른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멋진 퍼포먼스는 신체의 균형과 조화, 근력, 달리기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무엇보다 부상이 없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또한 달리기는 정신적인 성숙과 함께 깊이를 더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경험이 쌓이고, 장거리 달리기가 한결 편안해지며, 몸과 마음이 함께 성장합니다. 달리기는 인간 본연의 원초적 운동이자, 신체와 정신을 동시에 단련시키는 삶의 도구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젊은 러너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기록에 조급해하기보다 미래를 향해 단단히 성장해 나가라고요. 달리기를 통해 몸과 마음을 균형 있게 키워내서, 언젠가 그런 자신을 진정으로 값지게 여길 수 있는 멋진 러너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가장 까다롭고 아름다운 코스, 시드니 마라톤

2025년 8월 30일, 저의 101번째 풀코스로 시드니 마라톤에 참가했습니다. 기록은 3시간 28분. 저에게는 보스턴, 시카고, 뉴욕, 런던에 이어 다섯 번째 메이저 완주라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시드니 마라톤은 올해 새롭게 세계 7대 메이저에 이름을 올린 대회입니다. 출발지는 노스시드니 브래드필드 파크로, 하버브리지를 건너 도심을 가로지르고 오페라하우스 앞에서 마무리됩니다. 시드니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들을 지나는 관광지 코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징적인 루트지만, 코스 자체는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길, 잦은 업다운과 수직 롤링 때문에 메이저 중 가장 난코스라는 평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8~17℃의 선선한 기온과 낮은 습도 덕분에 달리기에는 최적의 날씨였죠. 시차는 1시간에 불과했지만, 실제로는 지구 반대편에 와 있는 듯한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초반 10km까지는 속도가 쉽게 올라갑니다. 그러나 20km부터는 도심 속 아기자기한 언덕이 무한 반복되고, 30km 이후 보타닉가든을 지나면서는 체력이 아니라 근육이 버티는 싸움이 됩니다. 마지막 40km 구간에서는 오페라하우스가 보일 듯 말 듯 애태우다가, 결국 피니시 라인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집니다. 지금껏 경험한 결승선 중 가장 인상 깊은 경험이었습니다.

시드니 마라톤의 매력은 극한의 도전에만 있지 않습니다. 도시 자체가 주는 풍광, 러너 들과의 교감, 그리고 청명한 날씨가 만들어낸 분위기까지 더해져 마라톤 본연의 즐거움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시드니 마라톤에서 무리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기를 즐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기록을 위한 경쟁보다 순간순간의 풍광과 호흡을 마음에 새기려 한 것이 가장 값진 성과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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