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생물다양성 급감과 폐기물·오염물질 홍수 등 인류는 전례 없는 환경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UN이 삼중 행성 위기(triple planetary crisis)라고 규정한 위기의 시대, 회복탄력성은 우리가 살아가는 지구, 그리고 지구촌 생태계를 위해 가장 간절하고 핵심적인 역량이다. 고려대학교 R&D센터 614호, 고려대학교 오정리질리언스연구원(원장 이우균 환경생태공학부 교수)에서 바로 이 생태계의 회복탄력성에 대한 세계적 수준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 기부자의 꿈, 생태 회복력 분야의 세계적인 허브로
고려대학교 오정리질리언스연구원(OJEong Resilience Institute at Korea University, 이하 OJERI@KU)의 탄생은 고려대 교우이자 오랜 기부자인 자강산업 민남규 회장(농화학 66)의 기부에서 시작됐다. 2014년 민 회장은 지구를 지키는 연구를 통해 노벨상을 수상하는 연구자를 길러낼 수 있도록 10년간 매년 5억 원씩 총 50억 원의 기부를 약속했고 이에 학교에서도 매칭 펀드를 구성함으로써 OJERI@KU가 역사적인 출범을 했다.
민 회장은 "생태계 회복력에 대한 이해는 고려대학교 창립 이념의 핵심 개념이 자 우리의 내일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문제"라며 연구원이 10년 안에 생태 회복력 분야의 세계적인 허브로 발전하도록 아낌없이 지원할 것을 다짐했다.
이우균 원장에 따르면 OJERI@KU는 사회·생태·경관을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으로 바라보며 변화와 충격 속에서도 스스로 균형을 회복할 수 있는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 회복탄력성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도시와 생태계가 변화 속에서 새 질서를 만들어 가는 능력을 뜻하며 따라서 회복탄력성 연구에서는 기후변화 대응과 탄소중립 달성, 산림과 수자원 회복, 생태조경시스템과 그린 인프라 계획, 생물다양성 증진 및 환경정책 수립을 주요 방향으로 삼는다.
더 늦기 전에, 지구의 회복 메커니즘 규명과 대책 마련
지구의 회복탄력성의 핵심 개념은 적응주기(adaptive cycle)에서 출발한다. 모든 생태계는 성장–보존– 해체–재조직의 네 단계를 거치며 순환하는데 OJERI@KU의 연구원들은 이 주기를 사회·생태 시스템에 적용하여 산림의 복원력, 물순환과 홍수 관리, 도시의 그린 인프라 기능을 과학적으로 진단한다.
OJERI@KU에서 수행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연구는 임계점 연구이다. 맑고 깨끗하던 하천이 한순간에 녹조로 뒤덮여 버리는 때가 있다. 이는 하나의 문턱, 즉 임계점을 넘는 순간 질서가 완전히 바뀌는 체제 변환(regime shift) 이 일어나는 것으로 이를 다시 되돌리기가 대단히 어렵다. OJERI@KU는 위성 자료와 AI 분석을 활용해 기후변화와 생태계 훼손, 수질 악화의 임계 지점을 예측하고 그 임계 지점을 넘기 전에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환경 정책에 반영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이미 다가온 기후 위기 가운데 기존 체계 안에서 충격을 완화하는 과정과 구조 자체를 새롭게 설계하는 적응과 변혁 연구는 기후 재난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산림 관리, 물·식량·에너지의 균형을 고려한 SDGs-WFE 넥서스 전략, 폐기물의 순환 경제화 등이다. 적응과 변혁, 두 접근을 연결하여 사회·생태·경관이 스스로 학습하고 진화하는 회복 구조를 설계한다.
회복탄력성의 과학은 위기를 견디는 능력을 넘어 변화 속에서 균형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OJERI@KU는 이 원리를 바탕으로 환경과학과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지속 가능한 미래 모델을 탐구하고 있다.
OJERI@KU 연구진
경계를 허무는 지식의 융합, OJERI@KU의 연구 생태계
이우균 원장은 "우리 연구원의 가장 큰 자산은 바로 '사람'과 그들이 이루는 '협력의 생태계'"라고 말한다. 지구 환경 문제는 어느 한 분야의 전문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과제이기에 OJERI@KU에서는 환경과학, 생태학, 환경계획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전문가들이 5개의 핵심 연구 그룹으로 모여 지식의 경계를 허물고 역동적인 시너지를 창출한다.
5개 연구 그룹은 폐기물을 오염원이 아닌 자원으로 보고 순환 경제를 구축하는 기술과 정책을 연구하는 지속가능한 폐기물 관리 그룹, 물 문제에 대응해 유해 녹조를 제어하고 하천 생태계의 자연 치유력을 복원하는 방안을 찾는 물 회복탄력성 그룹, 한반도의 온실가스흡수원의 탄소순환을 평가하고 기후재난을 예방하는 적응능력 향상을 통해 지속가능한 관리 방안을 제시하는 기후변화 회복탄력성 그룹, 생태계의 건강성을 시공간 및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시스템과 정책을 설계하는 생태계 지속가능성 그룹, 물(Water), 식량(Food), 생태계에너지(Ecosystem/Energy)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통합적으로 분석하여 문제 해결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종합적으로 달성하는 전략을 연구하는 SDGs-WFE 넥서스 그룹 등이다.
이 그룹들의 협업에 대해 OJERI@KU의 부원장을 맡고 있는 전진형 교수(환경생태공학부)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각각의 그룹은 독립된 섬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배출된 오염물이 빗물과 함께 하천으로 유출되는 비점오염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질을 분석하고(물 회복탄력성 그룹), 강우 패턴 변화를 예측하며 (기후변화 회복탄력성 그룹), 생물다양성 영향을 평가하는(생태계 지속가능성 그룹) 팀들이 긴밀히 협력하고, SDGs-WFE 넥서스 그룹이 모든 요소를 통합해 최적의 정책 대안을 도출하는 유기적 협업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MLRN(중위도지역네트워크) 이끌며 글로벌 기후행동의 중심으로
국경이 없는 지구 환경 문제, 그 해법을 찾는 여정 역시 국경을 초월해야 하는 만큼 OJERI@KU는 스탠퍼드대학, 버클리 대학, 스톡홀름 회복탄력성센터 등 세계 유수 대학 및 연구 기관과 공동연구 네트워크를 갖추고 현재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담론을 주도한다. 그 핵심 플랫폼이 중위도지역네트워크(MLRN, Mid-Latitude Region Network)이다.
북위 30-60°의 중위도 지역은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곳이지만 만성적인 강수량 부족, 물-식량 스트레스, 사막화 등으로 기후변화에 취약하다.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상황애서 OJERI@KU는 2016년 MLRN의 설립을 주도하여 과학자와 정책결정자들이 국경을 넘어 협력하는 '과학 외교'의 장을 펼치고 있다.
그 결실 중 하나는 8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2025 MLRN 연례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한 것이다. <지속가능한 미래: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프레임워크와 거버넌스>라는 주제 아래 몽골 대통령실, 부탄 왕실, 세계 최대 기후기금인 녹색 기후기금(GCF) 등 세계 각국의 최고 기관들과 협력을 통해 진행된 이번 컨퍼런스의 키워드는 히말라야 고산지대를 포함하는 '제3극(the Third Pole)'이었다. 제3극은 아시아의 물 저장고라 불리며 20억 인구의 수자원을 공급하지만 최근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고유 생태계와 수천 년간 이어진 유목 문화까지 심각한 위협에 처한 지역이다.
연구자들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지역 단위에서부터 기후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탄소중립 마을 모델을 핵심 의제로 제시하고 몽골 정부의 10억 그루 나무 심기 운동과 연계하는 자연 기반 해법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또한 빙하 붕괴 대응 조기경보시스템 구축과 같이 당장 적용 가능한 기술·정책을 다루는 등 과학-정책-금융을 잇는 핵심 중개자로서 OJERI@KU의 역할과 사명을 확인하였다.
출범 11년만에 생태계 회복의 핵심 중개 브레인으로
OJERI@KU는 10년 남짓한 역사에도 여러 괄목할 성과들을 만들어냈다. 2021년 한국연구재단(NRF) 자율 운영 중점 연구소로 선정되어 9년간 총 120억 원 규모의 안정적인 연구 지원을 확보했다. 이는 OJERI@KU가 기초과학 분야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연구 허브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으로 OJERI@KU의 연구가 모든 기후 예측과 효과적인 환경 정책의 주춧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최근 산불이 대형화되고 국가적 재난으로 번지는 상황에서 과학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산불 및 산사태 조기경보 시스템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지난 3월 초대형 산불은 10.4만ha 피해 면적에서 약 764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 (국내 연간 배출의 1%, 산림 연간 흡수량의 약 20%)하며 국가 및 지자체의 탄소중립 달성에 적신호를 주었습니다. 우리는 산불의 위험 요소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연구를 통해 2023년 2월부터 연구원 웹사이트를 통해 매일 전국 산불 및 산사태 위험도를 예측하는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소방 당국의 사전 자원 배치와 대민 경고에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살아 있는 과학의 좋은 예입니다." (박훈 연구교수)
그 외에도 탄소중립 마을 및 탄소중립 벨트 개념(산림의 탄소 흡수라는 환경적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여 친환경 상품 개발, 녹색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을 통해 기후 행동을 국가적 난제인 지방 소멸 문제 해결과 연결하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지방 공동화로 비어가는 국토라는 부담을 탄소중립의 핵심 자산으로 전환하는 발상으로 환경과 사회·경제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통합적 접근법을 잘 보여준다.
자원순환 시스템 확립을 위한 사회 연계 활동에도 힘써 캠퍼스 폐플라스틱 자원회수 기술 개발과 리빙랩 구축을 통한 고려대학교 교내 자원순환에 기여하는 등 공동체적 회복탄력성을 평가하고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는 데 이바지하고 있다.
지구 생태계 회복의 거대한 여정은
우리 삶의 터전에서부터
OJERI@KU가 추구하는 순환, 지속가능성, 회복탄력성의 원칙은 우리가 모두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고 또 실천해야만 하는 삶의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지구의 회복 탄력성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연구원은 다음과 같은 간곡한 부탁을 전했다.
1 첫째, '순환 캠퍼스'의 주역이 되어주십시오.
'쓰레기는 없고 자원만 있을 뿐'이라는 마음으로 함께해 주세요. 일회용품 소비를 의식적으로 줄이고 꼼꼼하게 분리 배출하는 노력, 물건의 전 생애주기를 고려하는 소비 습관 등 작은 실천이 모여 순환 경제의 기반을 다집니다.
2 둘째, '캠퍼스 탄소중립'의 파트너가 되어주십시오.
고려대학교 탄소중립 계획의 성공은 이제 고려대 가족의 손에 달렸습니다. 연구실과 기숙사에서 불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고,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며, 대학의 녹색 인프라 투자에 지지를 보내주십시오.
3 셋째, 가장 강력한 변화의 도구는 아는 것. '생태적 소양'을 기르고 끊임없이 배우고 참여해 주십시오.
환경 관련 교양 과목을 수강하고, 우리 연구원이 주관하는 공개 강연을 듣고, 친구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며 지속가능성을 우리 공동체의 핵심 가치로 만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