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습관을 형성하여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한다. 아침에 일어나 양치질을 할 때, 잠이 덜 깬 상태로 전기밥솥을 이용해 밥을 지을 때, 자전거에 올라타서 페달을 밟을 때처럼, 행동이 습관화되면 복잡한 일도 별다른 생각 없이 수월하게 해낼 수 있다. 몇 단계에 걸쳐 이루어지는 행동뿐 아니라 그보다 더 복잡한 행동도 일단 습관으로 형성되고 나면 큰 실수나 에너지 낭비 없이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습관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밤만 되면 야식을 주문하거나, 침대에 누우면 스마트폰으로 쇼츠 영상을 보는 습관처럼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습관도 있다.
습관화된 행동을 할 때는 단순히 움직임만이 아니라, 그와 연관된 생각·감정·행동 패턴도 함께 활성화된다. 어린 시절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나 감정, 했던 행동 등이 자연스럽게 함께 녹아들어 습관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며든 습관은 자동화되어서, 일정한 환경에 처하면 우리가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습관화된 생각을 하고, 감정을 느끼고, 행동을 실행한다. 이것이 우리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 DMN)에 각인된 습관적 패턴이다. DMN은 특정 상황에서 자동으로 활성화된다.
“저는 왜 항상 이런 식으로밖에 행동하지 못할까요?”
“중요한 순간마다 꼭 도망치게 돼요.”
“밤만 되면 걱정이 많아지고 거기서 빠져나오기가 힘들어요.”
“이제는 다른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요.”
가상의 대학생 내담자를 예로 들어보자.
그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였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였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욱하는 성격으로 때때로 어머니와 자녀들에게 신체 폭력을 행사했으며, 언어적 폭력도 잦았다. 어머니는 오랜 우울증을 겪고 있으며 늘 힘들어 보였다.
내담자는 둘째 아들로, 내향적이고 온순한 아들로 기억되었고, 형은 자기주장이 강해 자주 부모와 부딪쳤다. 내담자는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화를 내는 방식을 보면서 화라는 감정을 정말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부모님과 형이 부딪치는 것을 보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모두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힘든 감정을 외면하려고 노력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갈등을 만드는 것 같으면 먼저 포기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렇게 해도 감정이 해결되지 않고 분노가 치밀 때면 스스로를 못된 사람, 배려 없는 사람이라 비난했다. 부모에게 서운함을 느껴도 “내가 너무 옹졸한가 봐”라며 자책했다.
내담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대신, 남들이 알아서 챙겨주거나 배려해 주기를 원했지만, 항상 실망할 뿐이었다. 결국 부모님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남을 믿지 않는 것이 좋다는 신념도 만들었다. 대학생이 된 이후 그는 점점 더 외로움을 크게 느꼈고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기가 어려웠다. 힘들 때면 혼자 술을 마시거나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냈고, 자기-비난적인 생각에 쉽게 빠졌다. 수면 패턴도 흐트러지고, 학업도 어려워졌다.
이 사례에서 내담자는 어린 시절 가정환경에 적응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자신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다루는 태도와 행동을 형성했다. 이러한 일련의 생각, 감정, 행동은 습관화된 패턴이 되었고, 이러한 습관은 디폴트가 되어서 내담자의 뇌에 각인되었다. 내담자는 비슷한 상황에 처하면 DMN이 활성화되며 유사한 패턴을 반복하게 되었다.
습관을 바꾸는 세 가지 심리학적 전략
그렇다면 이런 자동화된 습관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DMN을 변화시키는 첫걸음은 감각을 깨우는 것이다. 자동화된 상태에서는 새로운 감각을 차단하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감각을 일깨우는 것만으로도 자동적인 흐름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는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걱정이 시작될 때면 주변에서 새로운 것 다섯 가지를 찾아보거나,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의 맛과 향에 집중하고 각각의 요소를 느껴보거나, 음악에서 기타 소리, 드럼 소리 등에 집중해 보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의 감각을 깨우면 DMN의 자동 반응을 잠시 멈출 수 있다.
두 번째는 자기-인식을 하는 것이다. 자동화된 패턴이 시작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의식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인식’은 “내가 지금 화가 났구나”, “내가 속상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구나”, “내 안에서 지금 막 쇼츠를 보거나 야식을 먹고 싶은 충동이 느껴지는구나” 등과 같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세 번째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전전두엽은 머리 앞 이마 쪽에 있는 뇌 부위로 문제를 해결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하는, 우리 뇌의 감독과 같은 기관이다. 자동화된 사고가 작동할 때면 “너는 항상 그래”, “넌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 “넌 쓸모없어”와 같은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때 전전두엽을 활성화하면 사실에 근거한 균형 잡힌 생각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잘했던 혹은 잘하는 일은 무엇인지, 내 주변 친구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내 친구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나는 뭐라고 말해 줄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런 질문에 답을 할 때 우리의 전전두엽이 활성화되고, 자동화된 DMN을 잠시 멈춘다.
마지막으로, 자기-자비(self-compassion)를 연습하는 것이다. 자기-자비는 지금의 나를 따뜻하게 바라보고, 친절한 마음과 연민의 마음으로 감싸는 것이다. “100세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위로의 말을 해 줄까?”, “내가 좋아하는 혹은 존경하는 어른이 내 앞에 있다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위로를 건넬까?”, “신에게 기도한다면, 신은 이런 상황에 처한 나에게 어떤 말을 할까?”를 잠시 생각해 보고, 친절한 위로나 연민의 감정을 떠올릴 수 있다면 훌륭한 자기-자비 연습이 된다.
자기-자비의 연습은 기존의 DMN을 멈출 뿐 아니라, 새로운 DMN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다. 습관은 효율적이지만, 효율이 늘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해로운 습관을 바꾸는 것은 결국 뇌의 패턴을 바꾸는 일이다. 그리고 뇌는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바꿀 수 있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위의 전략을 실천하다 보면 자동화된 부정적 습관은 서서히 약화되고, 새로운 습관을 디폴트(기본 상태)로 재형성할 수 있다. 새로운 습관은 우리가 우리를 비난하지 않고,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자신을 돌보게 할 것이다.
최기홍 교수
심리학부 교수, KU마음건강연구소 소장
마인딥 인지행동치료센터 센터장
(사)한국심리학회 부회장,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부회장
최기홍 교수는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네브래스카 주립대학교에서 임상심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컬럼비아대학병원, 예일대학병원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활동했고, 2012년 고려대에 부임했다. 현재 심리학부 교수이자 KU마음건강연구소 소장, 마인딥 인지행동치료센터 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사)한국심리학회 부회장,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인지행동치료 및 심리평가 개발 연구를 진행 중이며, 지역사회 정신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전통적인 심리서비스와 AI 및 ICT 기술을 접목하는 연구를 수행 중이다. 보건복지부장관표창, 통일부장관표창과 더불어 석탑연구상, 석탑강의상을 다수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