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교환학생 파견을 다녀온 나라는 오세아니아에 위치한 대자연의 섬나라, ‘뉴질랜드’이다. 그중에서도 오클랜드대학교에 다녀왔다. 솔직히 나는 교환학생에 대한 큰 로망이 없었다. 그냥 “대학생 때 교환학생은 한 번쯤 가봐야지” 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홀려 자연스레 교환학생 파견을 준비했다. 그런 나에게 나름의 목표가 있다면 ‘힐링’이었다. 이왕 한국을 떠나는 김에 한국에서의 바쁜 일상과는 정반대인 곳에서 여유를 경험하고 싶었다. 이러한 결심 끝에 뉴질랜드를 선택했다.
“와, 호주 교환? 좋겠다.”
내가 정말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이다. 그만큼 내 주위 사람들에게 뉴질랜드는 다소 낯선 나라였다. 사실 나도 그랬다. 뉴질랜드행 비행기를 타던 날까지, 관련 정보는 0에 수렴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만큼 미지의 땅 그 자체였기에 오히려 더 매력적이었다.
오클랜드는 뉴질랜드의 최대 도시로, 높은 건물들과 대형마트, 영화관 등 없는 게 없는, 말 그대로 ‘도시’이다. 사실 그래서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했다. 내가 기대한 뉴질랜드의 모습은 푸른 초원이 드넓게 펼쳐진, 웅장한 대자연이었기 때문이다(내가 기대했던 대자연은 남섬 여행을 하며 볼 수 있었다!). 도심과 자연이 공존하는, 익숙하면서도 이색적인 오클랜드의 풍경이 지금은 더 기억 에 남는다. 오클랜드는 항구를 끼고 있는데, 기숙사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면 무려 바다가 보이는 어마어마한 뷰다. 그리고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그야말로 ‘자연’. 가깝게는 미션 베이, 세인트헬리어스 비치, 특별히 멀리 나가고 싶은 날엔 타카푸나 해변 등 마치 뷔페처럼, 그날그날의 무드에 맞는 바다를 선택해서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참 흥미롭다.
(상단)오클랜드 항구에서 바라본 전경, (하단 왼쪽)남섬 여행, (하단 오른쪽)피크닉 풍경
이곳에서 나는 키위(Kiwi) 마인드를 배웠다. ‘키위’란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국조 키위새에서 비롯된 말로, 뉴질랜드 사람을 부르는 말로 해석된다. 그들의 대표적인 집단정신은 바로 ‘관대함’과 ‘여유로움’이다. 섬나라라는 특성, 유럽인의 이주와 영국의 식민 지배, 온화한 날씨 등 이 모든 조건이 결합돼 그들만의 고유한 에토스(ethos)가 만들어진 것이다. 빨리빨리 문화가 깃든 한국인이 보기에는 오히려 답답하게 느껴질 정도의 여유, 이것이 내가 뉴질랜드 생활을 하며 가장 크게 체감한 것이다. 과제, 시험, 각종 활동 등의 압박에서 벗어나 온전한 여유를 즐기는 법 말이다.
관련해서 기억 나는 일화가 있다. 그곳에 살며 친해진 한 언니로부터 ‘바다 수영’ 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게 무슨?’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키위식 바다 수영 문화는 색달랐다. 한국에서 바다 수영은 여름 휴가 때 큰 맘 먹고 가서 즐기는 이벤트였다면, 이들에게 바다 수영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 그 자체였다. 날이 풀리면 이들은 모두 바다로 향하고, 모래사장에 누워 여유를 만끽하는 ‘일상’을 즐긴다. 바다 수영 즐기는 법은 다음과 같다.
1. 준비물은 비치타월 한 장. 수영복은 옷 안에 입고 간다.
2. 바다에 빠져 논다. (언니 말에 의하면 파도의 흐름에 맞춰 놀면 된다.)
3. 다 놀았다 싶으면 대충 모래 위에 비치타월을 깔고 누워 햇빛에 수영복을 말린다.
뉴질랜드는 자외선이 매우 강해 아주 잘 마른다!
4. 적당히 마르면 옷을 챙겨 입고 집에 간다. 수영복이 다 마르지 않았다면 그냥 수영복 위에 가벼운 겉옷만 걸친 채, 혹여 신발이 덜 말랐다면 신발을 손에 든 채 맨발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면 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을 테니!
바다수영
바다에서 놀며, 모래사장에 누워 몸을 말리며, 그리고 축축한 맨발로 버스를 타러 가며 느꼈던 감정은 그야말로 ‘행복’이었다. 내가 생각보다 바다 수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뉴질랜드의 자외선이 수영복을 금방 말릴 정도로 강하다는 사실을, 차갑게 식은 맨발로 뜨겁게 가열된 아스팔트를 걸으면 딱 좋은 온도가 된다는 사실을, 마지막으로 내가 생각보다 더러워지는 것에 거부감이 크지 않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진정한 뉴질랜드를 경험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그런 건 한국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조금의 걱정 혹은 근심 없이 온전히 그 순간에 집중할 수 있었던,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피크닉 풍경 2
물론 교환학생의 삶이 마냥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할 때, 3만 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을 때, 갑자기 사랑니가 아파져 병원에 갔는데 진료비만 10만 원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을 때 등 한국이 그리웠던 날도 수없이 많다. 그러나 나는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오클랜드대학교로의 파견을 선택할 것 같다. 뉴질랜드, 특히 오클랜드는 한국과 닮은 구석이 있는 듯하면서도 완전히 색다른 곳이다. 대표적인 이민 국가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다양한 민족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 과제 혹은 시험 공부를 하다가 답답하다는 생각이 들면 돗자리를 들고 뛰쳐나가 근처 공원이나 바닷가에서 그저 ‘멍’ 때릴 수 있는, 일상의 여유를 온전히 허락하는 나라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문득문득 생각날 정도로 그립다.
나는 ‘지금이 아니면 내가 언제 이런 경험을 해 보겠어?’라는 낭만을 품고 파견을 떠났고, 결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지구 반대편, 낯선 오세아니아 대륙에 나의 또 다른 고향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흐뭇하기도 하다. 일상을 살아가다 계절이 바뀔 때가 되면, 예컨대 롱패딩을 꺼내 입을 시기가 되면 그곳에서 바다 수영을 하고 있을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봄이 찾아오는 지금 시기에 그곳의 날씨는 또 어떨지 떠올리는 재미가 있다. 아마 이 재미는 평생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그곳을 또다시 방문했을 때 그곳의 모습과 내 감정은 어떠할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새로운 목표가 오늘의 일상을 성실하게 살아갈 또 하나의 동기로 자리 잡았다. 이것만으로도 내 교환학생 파견은 성공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