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자녀의 발달이 또래와 달라 보일 때, 부모들은 막막함을 느낀다. 신뢰할 수 있는 진단과 효과적인 지침을 찾기가 어려운 현실 속에서, 국내 아동 발달 임상 전문가의 부족은 더욱 큰 걸림돌이 된다. 이런 가운데, 국내 유일의 유아기 자폐 연구 전문 랩을 운영하는 곳이 있다. 바로 심리학부 김소현 교수의 연구실이다. 올해 부임 4년차인 김소현 교수는 더욱 빠르고 정확한 진단과 적절한 지원이 이뤄지도록 연구와 임상을 이어오고 있으며, 그의 연구실인 스펙트럼KU는 현재까지 자폐 아동 120명, 일반 아동 120명 등을 대상으로 코호트 연구(cohort study, 동일한 특성을 가진 집단을 일정 기간 추적·관찰하는 연구 방법)를 진행하고 있다. 국내 영유아 자폐 연구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스펙트럼KU의 구성원들을 만나 보았다.
김소현 교수
국내 유일의 공인 트레이너, 연구와 임상을 잇다
김 교수의 연구는 단지 ‘진단’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및 기타 발달 장애를 가진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다양한 임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정확한 진단법을 개발할 뿐 아니라, 당사자와 가족들이 일상에 적응하도록 돕고, 자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교육과 강연도 병행한다. “뇌파 실험을 통해 자폐인이 겪는 어려움이나 자폐인 특유의 강점이 뇌 활동과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또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아이들의 행동과 언어 패턴을 분석하여, 병원 및 학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진단 및 지원 도구를 개발합니다.”
김 교수는 부모들의 자폐 영유아 조기 개입 방법 중 세계적으로 효과성이 입증된 진단 도구인 ADOS/ADI-R*의 국내 유일 공인 트레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코넬대학교 의과대학에서 7년 동안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와 임상을 이어오다가 지난 2022년 본교에 부임했다. 첫 학기부터 석탑강의상을 수상할 정도로 그의 강의는 학생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고려대 학생들의 첫인상은 정말 학구적이라는 것이었어요. 열정 넘치는 학생들 덕분에 수업마다 깊이 있는 토론과 질문이 끊이지 않았고, 덕분에 강의가 더욱 활기찼습니다.”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찾는 일
김 교수는 어린 시절, 주변에서 심리적인 문제를 가진 가족과 지인을 보며 한 사람의 어려움이 가족 전체의 어려움이 되는 것을 목격했다. 이를 통해 개인의 헌신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어요. 그러던 중, 유학 시절 저명한 자폐 연구자인 캐시 로드(Cathy Lord)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자연스럽게 자폐 연구와 임상에 발을 들이게 되었죠. 연구를 거듭할수록, 자폐인과 그 가족을 깊이 이해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습니다.”
김 교수의 랩은 현재 15명의 연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연구 환경 속에서, 그는 유연함, 에너지, 그리고 팀워크를 연구실 운영의 핵심 가치로 꼽는다. “저희 랩은 올라운드 플레이어(All-round player), 즉 여러 분야를 유연하게 넘나들며 배우고 도전하는 연구자를 찾고 있습니다. 또한, 좋은 연구와 임상은 결국 좋은 팀워크에서 비롯된다고 믿기 때문에, 서로 돕고 배려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러한 협력을 바탕으로 자폐인과 그 가족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저희 랩의 핵심 가치입니다.”
김 교수는 자폐 아동들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사회성 발달을 돕는 데 초점을 맞춘다. 더욱 정확한 진단법과 효과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단순히 학문적 성과를 넘어 자폐인의 삶과 일상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얘기해요 스펙트럼KU
스펙트럼KU 연구원들
랩에서 맡은 역할을 소개해 주세요.
예슬: 연구실 종단 연구인 NEST 프로젝트의 아동검사 스케줄링을 담당합니다. 그리고 자폐 아동의 치료 전후 증상 변화를 분석하는 MONSI(Monitoring System for Social Interaction) 코딩 리드 및 실행기능 향상 프로그램의 중재자로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수형: 저도 비슷하게 학령기 자폐 및 전형발달 아동, 자폐 성인을 대상으로 뇌파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며, 실행기능 예측 및 증상 기반 클러스터링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폐 인식 개선 교육 자료 번역 및 중재 인식 서베이 구축 등 신경다양성 인식과 관련된 연구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애린: 저는 만 5-7세 자폐 아동을 위한 실행기능 중재 프로그램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룹 및 개인 중재 세션을 통해 프로그램의 효과성을 측정하고 있습니다.
은실: 연구실 운영을 지원하며, 스케줄링·비품 관리 및 참여 아동 부모님과의 연락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우리 랩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은실: 아동 심리에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4학년 때 교수님이 부임하셨어요. 수업을 듣고 학부 인턴을 거치면서 ‘이 교수님 밑에서 연구하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교수님 첫 제자랍니다.
예슬: 저도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러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합니다. 수업 시간에 소개해 주시는 자폐 연구의 최신 경향, 신경다양성 등이 너무 흥미로웠어요!
수형: 대학에 들어와 다양성 관련 주제에 대해 고민하던 중, 교수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그 현장에서, 저도 이 분야 연구 확장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애린: 소아정신과 연구실에서 다양한 신경발달장애 아이들을 만나며 자폐 아동에게 특히 관심이 갔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던 중 교수님의 워크숍에 참여했고, 이 분야를 더 깊이 연구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랩 생활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수형: 저희 연구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연구 대상자를 모집하여 다양한 검사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실험 과정에서는 교수님의 임상 평가 지도를 받고, 다양한 자폐 당사자를 만나 ASD(Autism Spectrum Disorder, 자펙 스펙트럼 장애)의 이질성을 직접 경험합니다. 실험에는 모집, 스크리닝, 스케줄링, 평가, 데이터 관리 등의 포괄적인 절차가 다 포함되는데, 한 실험 일정에 두 명이 참여하여 4-6시간이 소요되니 품이 많이 드는 과정이죠. 또한, 교수님께서 개발하신 도구를 활용해 아동과 부모의 놀이 활동을 코딩하며 분석합니다. 매주 랩 미팅과 개인 미팅을 통해 교수님께 개인 연구 지도를 받고, 학기 중에는 다양한 전공 강의를 들으며 임상적 지식을 쌓습니다.
애린: 저는 주 평균 2-3회 정도 검사 일정이 있고요, 출퇴근 시간이 유연한 편이라 검사나 수업이 없는 시간에는 과방에서 업무를 보고, 줌 미팅이나 중재 세션이 있는 날에는 재택근무를 하기도 합니다.
스펙트럼KU에서는 놀이기반 실험, 뇌파 검사 등 표준화된 검사 도구를 활용해 정확하고 종합적인 진단 및 평가를 제공한다
우리 랩의 분위기 메이커는 누구인가요?
예슬: 저희 모두요!
애린: 예슬 샘이 계시면 여기저기서 웃음이 나오는 것 같아요. 톡방에 올려주는 짤이나 이모티콘에도 빵 터질 때가 많습니다.
p>은실: 다들 활발하고 재미있지만, 저는 우리 랩에서 가장 외향적이신 교수님을 뽑고 싶어요! 연구실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사소한 습관이나 특징까지 기억하실 뿐 아니라, 작은 이벤트나 변화도 알아보시고 스몰톡을 건네주시거든요. 랩의 최고 분위기 메이커라고 생각합니다!연구실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나눠주세요.
예슬: 얼마 전 제가 치료했던 아이와 어머니께서 방문하셨어요. 아이가 일상에서 감정 조절이랑 인지적 유연성, 억제력이 부족해서 어머니께서 너무 막막하셨는데, 저희 중재 프로그램을 통해 많이 성장했고, 초등학교 입학도 걱정이 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이게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임상가로서 우리의 역할이구나!’를 몸소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수형: 개인적으로는 작년 가을, 연구 데이터를 처음으로 분석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일주일 남짓한 짧은 기간이었고 시험 기간까지 겹쳐 힘들었지만, 교수님의 집중 지도 덕분에 무사히 기한 내에 제출할 수 있었어요.
김소현 교수님 랩이나 이쪽 분야로 진학을 희망하는 학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은실: 저희 연구실은 자폐 아동과 청소년, 성인,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분위기가 정말 좋아요. 〈동물의 숲〉 게임처럼, 서로 늘 배려하고 분담하고 협력하는 분위기죠.
애린: 끈기와 체력도 중요한 것 같아요. 바쁜 만큼 많이 배울 수 있는 연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