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이는 말. 장선경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가 만드는 광고는 늘 그 자리에 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발견한 반짝이는 언어로 빚어낸 그의 광고는 시대의 질문을 조심스레 건네고, 함께 웃을 수 있는 답을 만들어낸다. 농협의 '같이의 가치', 정관장의 명절 광고부터 카누, 알바몬 캠페인까지. 오랜 시간 브랜드와 함께하며 변화하는 시대의 감정을 짚어온 그는 사람을 관찰하고, 콘텐츠를 디깅하고, 마음의 움직임을 기록하며 시대의 언어를 수집하고 다시 짓는다.
알바몬 TV 광고
카누 광고
정관장 광고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 마음을 연결하는 어른이 되다
"저는 전교생 친구였어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장선경 CD가 웃으며 꺼낸 말이다. 농담 같지만, 그 말은 장 CD의 성향을 정확히 말해 준다. 사람을 좋아하고, 관계에서 힘을 얻으며, 무언가를 배우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람. 서예, 캘리그라피, 손그림 등 하나를 시작하면 끝까지 몰두하는 성향은 어릴 적부터 분명했다. "글씨 예쁘게 쓴다는 말을 듣고 '더 배워볼까?' 싶어서 서예를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갑자기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딴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 나이에 쓸 일은 없지만, 그냥 흥미가 생기면 해 봐야 직성이 풀렸어요."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 시절 연합 동아리에서 광고와 처음 만났다. "광고하는 애들은 뭔가 재밌겠다 싶어서 들어갔어요." 그가 그 시절 유독 인상 깊게 본 건 SK텔레콤 광고였다. "통신이 사람을 향할 수 있다니, 그게 너무 신선했어요. 기술이 아니라 감정을 건드리는 광고였죠."
그리고 졸업 후 광고 대행사에서 실무를 익히던 중,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은 시기에 했으니 정말 열심히 했죠. 실무 경험 덕분에 수업 시간에도 배우는 이론이 바로 피부에 와닿았고요." 그 시절은 배움의 몰입도와 인연의 밀도가 모두 깊었다. "언론대학원에서 캠퍼스 커플이었고 지금은 남편이 된 선배와 중앙도서관(중도)에서 같이 공부했어요. 중도에 가면 학생들의 에너지 덕분인지 이상하게 집중이 잘됐어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리운 곳이에요."
마음을 포착하고, 시대와 호흡하는 일
광고는 시대를 기록하는 일이다. 동시에, 시대를 느끼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장선경 CD가 오랫동안 이끌어온 브랜드는 '정관장'과 '카누'. 단발성이 아닌, 10년 넘게 관계를 이어온 캠페인들이다. "정관장 명절 광고는 매년 고민의 연속이에요. 가족과 명절에 대한 인식이 정말 많이 바뀌었거든요."
'명절에는 꼭 찾아뵈세요' 같은 메시지는 이제 시대착오적으로 읽히기 쉽다. "대신 '엄마한테 고마운 마음 있잖아요' 같은 말을 건넬 수 있어야 해요. 가르치려 들지 않고, 대신 마음을 건드리는 방식으로요. '맞아, 나도 저런 마음 있었어'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거예요."
이 일은 책상 앞에만 있어서는 결코 할 수 없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SNS에서, 그는 끊임없이 관찰하고, 메모하고, 상기한다. "사람들이 어떤 단어를 쓰고, 어떤 방식으로 말하는지 계속 들여다봐요.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이건 다음에 꼭 써야겠다' 하고 각인시키죠."
2024년, '대한민국광고대상', '서울영상광고제' 그리고 '올해의 광고상' 등을 줄줄이 수상한 '알바몬'의 '올 여름 알바몬으로 알박아? 알바여?' 캠페인도 그런 태도에서 출발했다. 전 세대의 공감을 자아낸 결과였다. "세대나 성별에 관계 없이 '좋다', '기획자 상 줘야 한다', '계속 돌려본다'는 반응이 올라왔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 모두가 함께 좋아하는 캠페인을 만든다는 건 드문 경험이었죠."
2023 대한민국광고대상 시상식에서
수상 트로피
광고인의 감각은 계속 새로워야 하니까
"사람들이 지금 좋아하는 콘텐츠는 뭘까?" 장선경 CD는 지금도 끊임없이 묻고, 찾아보고, 본다. 유튜브, 넷플릭스, 티빙, 디즈니 등 새로 나오는 콘텐츠는 되도록 빨리 챙겨보고, 시청자들의 반응까지 살펴본다. "보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사람들이 '어떤 지점에서 반응하는지'를 같이 읽으려고 해요." 최근엔 제니의 앨범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콜라보 하는 뮤지션들을 보면 케이팝 가수가 아니라 글로벌 팝스타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하고 있다는 게 보여요. 완전히 달라졌죠."
새로움에 자신을 열어놓기 위해, 그는 특히 나이나 연차에 매이지 않고 팀원들의 감각을 존중한다. "요즘은 20대, 30대가 각각 완전히 다른 문화권에 있잖아요. 저 혼자서 다 알 수는 없어요. 그래서 팀 안에서 서로 관찰하고 배워야 해요."
끝까지 파보는 사람이 되기를
광고 크리에이티브에서 중요한 역량은 뭘까? 그는 탁월한 광고인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역량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 '긍정적인 태도' 그리고 '몰입의 깊이'를 꼽는다. "하고 싶은 걸 끝까지 파고드는 친구들은 결국 자기만의 관점을 갖게 돼요. 가령, 저희 팀 후배는 카피라이터인데 음악을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 광고에 음악을 녹여내기도 하고, 오디오 PD와 협업할 때 본인의 취향이 반영되기도 하죠. 그게 무엇이든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많이 쌓기를 바라요."
광고 한 편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장선경 CD의 작품들은 그 가능성을 조용히 증명해 왔다. 정답보다 공감을, 기술보다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사람을 오래 들여다보고, 마음의 결을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로. 그의 크리에이티브는, 늘 그런 마음에서 출발한다. 사람들이 "그 광고 봤어?"라고 말을 건네며 서로의 마음에 스며드는 순간, 그 캠페인은 비로소 힘을 가진다. 사람을 향한 이야기라는 믿음으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광고를 짓는 그의 여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SPECIAL : 광고인을 꿈꾸는 당신에게, 제일기획 장선경 CD의 커리어 Q&A
Q1. 광고계에서 일하며 가장 어렵다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A. 하루하루가 어려운 순간이에요. 사람들의 관심사나 반응은 속도가 정말 빠르거든요. 하루만 놓쳐도 감각이 뒤처지는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더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해요. 쉬운 것 같지만 계속 들여다보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Q2. 트렌드를 따라가는 감각은 어떻게 유지하시나요?
A. 콘텐츠를 병처럼 봐요. 음악, 패션, 드라마, 예능, 유튜브, 커뮤니티까지. 이동 중에도 틈날 때마다 챙겨봐요. 그냥 소비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왜 여기에 반응하지?"를 같이 읽으려고 해요.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관찰하는 거죠.
Q3. 실제 캠페인에선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 반응을 수집하나요?
A. 해시태그나 댓글을 많이 모아 봐요. 특히 명절 광고처럼 감정이 중요한 캠페인에선 사람들이 SNS에 어떤 단어로 감정을 표현하는지, 어떤 말에 반응하는지를 면밀히 살펴요. 그런 게 진짜 아이디어의 씨앗이 되더라고요.
Q4. 콘텐츠를 만드는 훈련은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요?
A. 나만의 SNS를 미디어처럼 써 보세요. 일상을 보여주는 계정이 아니라, 내 생각과 취향을 정리하는 공간으로요. 그걸 꾸준히 해내면 어느 순간 포트폴리오가 돼 있어요. 본인의 언어와 스타일을 훈련하는 좋은 방법이에요.
Q5. 신입 광고인에게 추천하고 싶은 연습이 있을까요?
A. 본인의 취향을 끝까지 파고드는 거예요. 음악을 좋아한다면 해외 페스티벌을 다녀보고, 영화를 좋아한다면 전국 영화관을 다 돌아 보는 식으로요. 그렇게 쌓인 경험은 자기만의 관점이 되거든요.
Q6. 마지막으로, 광고인이 된 후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A. 제가 쓴 카피가 시대의 언어가 되었을 때요. 예전에 농협 캠페인에서 '같이의 가치'라는 문장을 썼어요. 그 말이 정말 많은 브랜드와 사람들이 쓰는 말이 됐죠. 어쩌면 광고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사람들 마음속에 남는 문장을 짓는 게 아닐까 싶어요.
""사람의 마음을 가장 먼저 움직이는 건, 결국 사람의 언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