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철학, 거래보다 관계를 우선하는 감각. 우준호 대표는 M&A를 '회사를 사는 일'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랜드에서 15년간 실무와 리더십, 현장과 전략을 두루 거친 그는, 지금은 M&A 전문회사 '우앤파트너스'를 설립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협상과 거래의 정의를 다시 쓰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최근 JTBC 드라마 〈협상의 기술〉의 모티브를 제공했으며, 비즈니스 세계에 인간적인 온기를 불어넣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협상의 기술> 포스터
입학 첫날 동아리 문을 두드린 사람
고등학교 때까지 그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반장을 하고, 선생님들이 좋아하고, 공부도 열심히 했고요." 그러나 대학에 와서야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었구나' 깨달았다고 말했다. 입학식 날, 그는 고려대 기독교 동아리 방의 문을 직접 두드렸다. "지금 생각하면 좀 특이하죠. 요즘은 입학식 날 동아리에 찾아가는 학생이 거의 없잖아요." 그렇게 시작된 대학 생활의 중심은 단연 동아리였다. 정해진 틀을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첫 실전 무대였던 셈이다.
수험생 시절 정치외교학과 진학도 희망했지만, 그는 경영학의 실용성과 가능성에 자연스럽게 끌렸다. 고려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그는, 이 학문이 생각보다 훨씬 더 생생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현장과 닿아 있는 학문이라 배운 걸 금세 써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었죠."
수업에서 배운 경영학 이론만큼이나, 리더십을 직접 발휘한 경험도 고려대학교 안에서 이루어졌다. 입학식 날 가입한 동아리의 대표를 맡으며, 실전 경영의 무대가 자연스레 열렸다. "회사로 치면 예산도 없고, 승진도 없고, 권위도 없는 조직이잖아요. 그런데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고, 함께 비전을 만들어가야 했어요. 그게 저한테는 진짜 경영 훈련이었죠."
이 시기의 별명도 남다르다. "그때 제가 스스로 붙인 별명이 있었어요. '미남 대표'라고. 사람들에게 더욱 편하게 다가가기 위해 장난처럼 그렇게 불렀죠."
동아리방은 그의 두 번째 집이나 다름없었다. 방과 후엔 함께 농구를 하고, 밤이 되면 다 함께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며 웃고 떠들었다. "그땐 진짜 별거 없어도 재밌었어요. 동아리방에서 놀거나, PC방 가서 게임하고, 농구하고, 당구 치고… 그게 다였는데도요." 진지함과 유쾌함이 동시에 배어 있는 학창 시절이었다.
숫자 너머의 감각, 그게 M&A
이랜드 입사 초기, 그가 지원한 부서는 전략기획이었다. 그러나 채용 과정에서 M&A 팀에서 신입을 처음 뽑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향을 틀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면접관이었던 임원의 한마디였다. '우리는 회사를 사는 게 아니라, 살리는 일을 합니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뭔가 멋지다고 느꼈어요. 저런 일을 한번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그는 M&A 팀의 신입사원으로 입사했고, 이후 수많은 인수합병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실무자로 성장했다.
하지만 일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고민도 생겼다. "내가 하는 일이 과연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하고 있는 걸까?" 그는 이 질문을 품고 9년 차에 회사에 요청했다. M&A를 내려놓고, 실제 현장에 가고 싶다고. "호텔 사업부로 발령이 났고, 첫 6개월 동안은 정말 접시 닦고 청소하고 그릇 치우는 일만 했어요. 이전까지는 숫자로만 경영을 봤다면, 그때는 진짜 현장을 처음 경험한 거죠."
현장을 거친 뒤에도 그는 패션사업부 등 여러 분야를 거치며 비즈니스 전반에 대한 감각을 넓혔다. 그가 M&A를 다시 바라보게 된 데는 이 경험들이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진짜 사업이 돌아가는 감각을 손끝으로 느낄 수 있었어요."
대기업의 속도를 벗어나 직접 판을 깔다
2019년, 그는 무신사의 온라인 쇼핑 플랫폼 사업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왜 우리 회사는 새로운 걸 시도하지 않게 됐을까?" 대기업이 스타트업처럼 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는 구조에 대한 답답함이 쌓여갔다.
결국 그는 직접 이랜드 내에 벤처투자 조직(CVC)을 만들었다. 스타트업을 투자하고 육성하는 실험이었지만, 조직의 속도는 그의 생각과 달랐다.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죠. 그게 저의 15년 이랜드 생활의 마무리였어요."
사표를 낸 뒤 그는 6개월간 쉬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가족과 제주도 한 달 살기도 다녀왔다. "그 시간을 통해 회복했어요. 그리고 문득, 나도 내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처음부터 아이템이 있었던 건 아니다. 대신,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M&A. 예전에는 회사를 위한 협상이었다면, 이제는 두 회사 모두를 위한 협상을 해 보고 싶었다. "결국 이 일은, 사람과 사람이 원하는 걸 찾아가는 일이에요. 잘되면 그 사람과 친구가 될 수도 있어요. 저는 그런 협상을 하고 싶습니다."
클라이언트를 찾는 기준도 명확하다. "저는 사람을 많이 가리는 편이에요. 돈만 원하는 회사와는 일을 안 하려고 해요. 제 가치관을 지키면서 일하는 것이 더 중요하거든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영역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방향이 달랐다. 회사의 이익보다 더 큰, 사람 간의 신뢰를 중심에 두기 시작한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클라이언트와 함께 클로징을 기념하며
프랑스에서 회의하는 모습
진짜 협상은, 끝나고도 친구가 되는 일
우 대표는 M&A에서 진짜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진정성'과 '일관성'이라고 말한다. 말과 태도가 끝까지 흔들리지 않아야 마지막 순간에도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말, 같은 눈빛, 같은 기준으로 가야 해요. 그러면 마지막 순간에 제가 던지는 말을 사람들이 믿어요. 그게 진짜 힘이죠."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그는 지금까지 15건의 국내외 인수·매각 프로젝트를 직접 이끌어 마무리했다. 단일 거래 규모는 최소 250만 달러에서 최대 5억 5천만 달러에 달하며, 전체 누적 거래 규모는 약 13억 달러에 이른다.
그중에서도 그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협상은, 거래 후 세레모니를 하며 서로 울고 감사 인사를 주고받았던 프로젝트다. "거래가 끝나면 한쪽은 보통 손해를 본다고 느끼기 마련인데, 그때는 정말 모두가 만족했어요."
또 어떤 중국 회사와의 협상에선 계약 당일 갑자기 300억 원을 깎아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는 협상을 즉시 종료시켰다. "그 자리에서 바로 말했죠. 당신 변호사들 다 데리고 집에 가라고." 그러나 협상은 2주 후 원래 조건으로 재개되었고, 결국 무사히 마무리됐다. "협상이란 건, 정말 돌아올 거라는 감이 있어야 끝낼 수 있어요. 저는 그게 있었고, 실제로 그들이 돌아왔죠."
유혹 많은 판 위에서, 나를 잃지 않아야
M&A, 투자, 금융 업계에서 일하고 싶은 후배들에게 그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단 하나다. 돈에 대한 가치관을 명확히 하라는 것. "이 일은 유혹이 많아요. 실제로 접대를 받거나, 기준 없이 흐르는 사람도 봤고요. 제가 그걸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신앙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냥 정신력만으론 어렵습니다."
그는 납득할 수 있는 매각 가격이 아니면 어떤 클라이언트와도 협상을 시작하지 않는다. "대표님 회사의 가치는 700억이 적절해 보입니다. 그 정도 가격에서 매각을 원하시면 맡기시고, 아니면 제가 진행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한쪽 편만 드는 게 아니라, 양측 모두가 나란히 자리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서다.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거래, 저는 그게 진짜 멋진 협상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그의 협상 철학은 최근 방영 중인 JTBC 드라마 〈협상의 기술〉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우 대표는 이 드라마의 모티브가 된 인물로서, '사람을 살리는 M&A'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해 왔다. "작가와 '따뜻한 자본주의'에 대한 얘기를 진짜 많이 했어요. 이 드라마가 그저 기업사냥 얘기가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연결하는 이야기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의 말대로라면, 협상은 냉혹한 전쟁이 아니라 따뜻한 전략이 될 수 있다. 픽션보다 더 탄탄한 현실을 살아온 사람답게, 그는 수많은 M&A 현장을 거치며 탁월한 협상가에서 나아가 기업과 기업을 잇는 연결자로 자리매김해 왔다. 앞으로의 방향은 분명하다. 사람 중심의 자본주의가 어떻게 현실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고자, 그는 여전히 실험 중이다. 단지 '잘 팔고, 잘 사는' 능력을 넘어, 좋은 거래를 통해 사람을 살리는 비즈니스. 그것이 우준호 대표가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질서다.
"진짜 멋진 협상은,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거래예요. 사람을 살리는 협상, 그게 제가 이 일을 계속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