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이죠. 동료 연구자들에게 인정받았다는 의미이니까요.”
노준홍 교수는 2024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연구자(Highly Cited Researchers, 이하 HCR)’에 선정되었으며, ‘크로스 필드(융합)’ 부문에 7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HCR은 글로벌 정보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에서 매년 선정하는데, 전 세계 연구자들의 논문 중 인용 횟수가 많은 상위 1% 논문을 기준으로 한다. HCR에 선정되었다는 것은 해당 연구자의 연구가 관련 분야에서 원천적인 기술로 인정받는 동시에, 현 시대에 특히 주목받고 있는 기술임을 의미한다.
태양전지의 뉴 패러다임 ‘페로브스카이트’를 연구하다
노준홍 교수는 박사 과정 이후 본격적인 연구자로 보낸 15년 중 약 절반 동안 HCR로서 주목받아 왔다. 그가 주력하고 있는 태양에너지의 효율적인 변환 기술 개발 중에서도,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소재를 활용한 태양전지 연구에 공헌도가 높기 때문이다. 페로브스카이트는 최근 태양전지 기술의 터닝포인트로 꼽히는 혁신 소재이다. 뛰어난 효율을 비롯해 간단한 제조 공정과 유연한 특성까지 태양전지의 판도를 바꿀 소재로 거론되고 있다.
“태양전지는 태양빛을 흡수해 에너지를 얻고, 이를 전기로 변환해 사용하는 장치입니다. 이때 여러 단계로 고려할 점들이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금속은 전기를 잘 전달하지만, 빛을 흡수할 수는 없고, 반대로 염료와 같은 물질은 특정 파장의 빛을 흡수할 수 있지만, 흡수한 에너지를 전기로 바꾸지 못하기 때문에 전지로 활용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태양전지는 소재에 대한 연구가 중요 과제입니다.”
현재 널리 사용되는 태양전지는 실리콘을 활용하는데, 효율성과 범용성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1990년대 초 염료감응 태양전지 개념이 제안되며 페로브스카이트 연구의 기초가 마련되었고, 2000년대 초 태양전지의 흡수층에 페로브스카이트를 처음 적용한 사례에서 우수한 효율성이 보고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후 2012년, 고체 전해질 방식이 개발되면서 액체 전해질 환경에서 불안정했던 단점을 해결하며 안정성과 효율성이 대폭 향상되었고, 페로브스카이트에 대한 연구가 급물살을 탔다.
노준홍 교수의 에너지변환 소재&소자 연구실(Advanced Energy Conversion Materials & Devices Lab)에서는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여 인류가 직면한 에너지 문제 해결에 기여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고성능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개발에 활용한 ‘양이온·음이온 양방향성 계면 엔지니어링 기술 모식도’
새로운 길에 대한 흥미가 이끌어온 시간
노 교수는 2011년, 한국화학연구원의 태양전지 연구에 합류하면서 이 페로브스카이트 연구 흐름의 시작부터 함께할 수 있었다.
“석·박사 과정 때는 전자 세라믹스를 연구했어요. 그런데 시대적으로 인류의 연구 방향이 시프트되는 것을 느꼈죠. 글로벌 난제 중 하나인 에너지 문제가 크게 다가왔고, 같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했을 때 그 시간이 더 의미 있는 일에 사용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당시 연구하고 있던 세라믹을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 관련 분야가 태양전지라는 것을 알고, 태양에너지 연구로 방향을 잡았죠.”
시대의 난제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때마침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신소재를 만나면서 인류의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로 자리 잡은 것이다.
“예전부터 저는 새로운 것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어요. 남들이 다 하는 것은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했죠.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해 보고, 거기에서 의미까지 찾을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은 결과일 것 같았어요”.
노 교수가 학부 때 재료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유도 새로운 소재를 만들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태껏 알려지지 않았던 무언가에서 쓸모 있는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기후위기와 에너지 문제에 기여하기 바라는 마음으로
“건축사회환경공학부는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거의 모든 인프라에 필요한 공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분야에서 에너지는 필수적으로 다뤄질 수밖에 없습니다. 산업화 이후에는 화석 연료가 주요 에너지원이 됐잖아요. 그러면서 CO₂ 문제가 발생했고, 현재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기후 위기가 발생하게 됐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금 이 시기에 에너지 문제를 현명하게 제어하지 못하면 문명이 사라질 수도 있겠지요.”
에너지와 관련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기후 문제로 이어졌다. 국제사회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인식한 뒤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하로 억제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이를 위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자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위해서는 CO₂를 발생시키지 않는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가 필수적이고, 현재 실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재생에너지 기술 중 하나로 태양전지가 꼽힌다.
1950년대부터 개발되어온 실리콘 태양전지의 효율은 약 20% 중반 수준이다. 반면 10여 년간 연구가 진행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효율은 27%를 기록하며 빠르게 성장 중이다. 또한 실리콘과 페로브스카이트를 함께 사용하는 탠덤 태양전지는 35% 수준의 효율을 보이며 일부 국가와 기업에서 상용화를 위해 노력 중이다. 페로브스카이트 단독 사용으로도 기존의 실리콘 태양전지 효율을 넘어서고 있지만 대량 생산과 실질적인 상용화를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노 교수도 이러한 부분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다양한 소재와 접합 방법 등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다양한 시선으로 기존과 다른 것을 발견하는 연구실
연구실에는 15명 정도의 연구원이 이 새로운 시도를 함께하고 있다. 다양한 분야가 융합된 노 교수의 전공처럼 연구원들의 전공도 다채롭다. 물리학, 화학, 기계공학, 건축사회환경공학 등 각기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여 기존과 다른 방향을 탐색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태양전지는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하는 주제이긴 하지만, 반도체를 이용하는 특성 때문에 주로 소재를 다루는 재료공학 전공자가 모이는 경우가 많은 것에 비해 노 교수의 연구실은 조금 더 특색이 있는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전공자들이 함께 연구하는 것이 우리 연구실의 남다른 시스템인 것 같아요. 전 그 다름에서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똑같은 것을 바라봐도 남들은 이쪽에서 보지만, 나는 저쪽에서 보겠다는 태도에서 새로움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연구실 학생들과 함께
태양전지의 효율성이라는 기술적 문제를 넘어
“제 연구의 방향을 쉽게 이야기하면 태양전지의 효율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효율성을 비약적으로 높이고 싶은 궁극적인 이유는, 널리 쓰이는 기술을 개발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놀랄 만큼 향상된 결과에는 더 큰 주목이 따라오고, 실제 사용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커지겠죠. 태양전지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용된다면 탄소 감축에 조금이라도 더 기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저희 연구가 지금의 기후위기를 온전히 극복할 방법을 찾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구자로서 노 교수의 목표는 인류의 난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나아가 노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뿐 아니라 고려대학교에서 함께 연구하는 각기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도 이러한 마음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정을 쏟는 시간들이 쌓이고 있기에, 인류 앞에 놓인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함께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