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삶의 방향을 새롭게 설정하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 그 기회를 잡아 담대한 발걸음을 내딛은 사람이 있다. 일생일대의 사고를 창업의 씨앗으로 삼아 차세대 소셜 커머스 기업 '마야크루'를 키워 나가고 있는 오준호 대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기반으로 한 소셜 커머스 플랫폼 '슈퍼멤버스'와 '슈퍼차트'를 중심으로 매년 두 배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마야크루는 2024년 5월 미국 시장에 진출하며 글로벌 기업으로의 비상을 시작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피어난 창업의 불씨
오 대표는 창업의 출발점이 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교통사고를 당해 침대에 누워만 있어야 했던 시기, 그는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군 휴가 중 교통사고가 크게 나서 두 달 동안 누워만 있었어요. 그렇게 누운 채로 제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생각하다가 어렸을 적 하던 오락기 게임 생각이 났어요. 죽어도 100원을 넣으면 계속 살아나는 게임이요. '이번 생이 내가 넣은 마지막 코인으로 사는 생이라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내 존재 이유를 찾아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교통사고 보험금을 초기 자본으로 사용하기로 부모님께 허락을 받았죠."
어린 시절 요식업 운영을 꿈꿨던 오 대표는 교통사고를 계기로 그 꿈을 소셜 커머스 창업이라는 더 큰 목표로 확장했다. 특히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의 연합 창업동아리 '인사이더스'에서 만난 멘토와 동료들은 그의 성장 과정에서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 주었다.
"인사이더스 설명회 때 발표를 맡았던 '스테이즈'의 이병현 대표님이 꿈을 심어 주었다면, '라이너' 김진우 대표님은 기업가 정신부터 창업의 모든 것을 알려 준 분이에요. 비슷한 시기에 창업하면서 고충을 나눴던 '뽀득'의 박노준 대표님(체육교육 10)도 종종 연락하는 사이고요. 2019년부터 인사이더스 멤버들을 중심으로 스타트업에 진심인 청년 창업가들과 '광인회관'이라는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살기도 했습니다. 멘토인 김진우 대표님과 매일 얘기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죠."
마야크루 동료들과 함께
소셜 커머스의 혁신을 꿈꾸다
2016년, 오 대표는 1세대 소셜 커머스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마야크루'를 창업했다. 당시 대다수 소셜 커머스 플랫폼이 판매했던 할인 쿠폰은 재구매로 이어지지 않아 매출 증대 효과가 미미했다. 결국, 많은 업체가 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이커머스(e-commerce)로 전환하는 상황이었다. 오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후기를 남길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사람'에게만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전략을 고안했다. 그는 인플루언서와 자영업자를 연결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기획하며, 재구매율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러한 비전을 현실화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슈퍼멤버스'라는 이름으로 첫 서비스를 준비하며, 초기 고객사를 확보하기 위해 서울 전역을 직접 발로 뛰었다.
"처음에는 음식점을 하루에 400곳씩 다녔어요. 한 명은 오른쪽 골목, 다른 한 명은 왼쪽 골목을 맡는 식이었죠. 서울의 메인 상권에 있는 음식점은 아마 다 들어가 봤을 걸요?(웃음) 앱 출시 전에는 20여 개 업체가 모였는데, 나중에는 1500개까지 늘어났습니다."
점진적으로 성과를 쌓아 가던 중,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위기가 찾아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자영업 매출이 급감한 이 시기에 오 대표 역시 사업의 미래가 불투명해지면서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는 기존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고객군을 확보하는 전략을 구상하며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사실 망하기 직전까지 갔어요. 친구에게 돈을 빌려 직원 월급을 줄 정도였으니까요. 외부 상황을 통제할 수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걸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죠. 기존 기술을 활용해 일반 기업으로까지 고객군을 확대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그렇게 탄생한 게 '슈퍼차트'라는 새로운 플랫폼이에요."
글로벌 무대를 향한 대담한 항해
인플루언서 영향력 분석 기술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확장하며 위기를 극복한 마야크루는 빠르게 성장했다. 2022년 5억 원, 2023년 21억 원, 2024년 45억 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투자 없이 자생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안정기에 접어들자 그는 새로운 도전의 무대를 미국 시장으로 정했다. 그의 관심은 최근 해외에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K-뷰티다.
"글로벌 시가총액 탑 100 중에 가장 많은 수의 기업을 보유한 프랑스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이름을 올린 5개 기업이 모두 뷰티, 패션 회사였거든요. 미국 현지에서 K-뷰티가 뜨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 저희가 잘하는 '인플루언서와의 연결,' 그리고 플랫폼 자동화를 하면 되겠다 싶었죠. 인플루언서는 뷰티 제품을 리뷰하는 미국의 틱톡커들과 연계하고요."
오 대표는 마야크루를 제2의 아마존으로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이미 미국에 '코스덕'(COSDUCK)이라는 '시딩'(seeding, 인플루언서에게 제품을 협찬하고 후기를 제공받는 마케팅 기법) 플랫폼을 출시했고, 이와 연동된 이커머스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마야크루의 꾸준한 발전 뒤에는 오 대표의 과감한 결단력과 끈기가 있다.
"겁이 없는 편이에요. 처음에 '슈퍼멤버스'를 만든다고 했을 때 주변의 투자자 분들이 다 말렸거든요. 하지만 제가 예상하는 미래를 믿기 때문에 그냥 계속 합니다. 2세대 이커머스는 '콘텐츠를 보고 제품을 구입하는 패턴'을 적용한 플랫폼일 거라고 봐요. 저희 플랫폼이 차세대 글로벌 이커머스가 된다면 아마존처럼 2천조 규모로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요?"
성장 가도에 오른 지금도 오 대표는 자신을 '초보 경영자'라고 부른다. 책임이 더 막중해졌지만, 그는 여전히 배워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점검하는 데 힘쓰고 있다.
"9년차에 들어섰지만 아직 저는 사업을 준비하는 대학생 대표라고 느껴요. 팀원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물어볼 때 '나도 잘 모르니까 같이 찾아보자'고 얘기하죠. 종종 힘들 땐 일기를 쓰고 러닝도 해요. 전력 질주를 하면서도 뛰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면 정말 힘든 시기인 거고, 숨이 차서 멈추고 싶으면 '요즘 살 만하구나' 하고 자체 평가를 내립니다(웃음).
'코스덕' 앱 내부 화면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조언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며 창업의 길을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그는 창업을 결심하기 전 충분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그는 창업의 동기가 단순한 경제적 이익이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방향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나중에 굶더라도 해 봐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면 도전하고, 돈이 잘 벌릴 것 같아서 가볍게 시작하는 거라면 안 하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저는 사고로 인해 강제로 누워서 하루 종일 생각하는 시간이 생겼지만, 창업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일주일이라도 좋으니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내내 느껴진 오 대표의 긍정적인 태도와 모험심은 그가 가장 좋아한다는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주인공, 해적 왕 루피를 닮았다. 친구들과 함께 세계 제일의 보물인 '원피스'를 찾아 나서는 루피처럼, 최고의 글로벌 소셜 커머스를 꿈꾸며 동료들과 함께 오늘도 항해를 이어 가는 마야크루의 선장, 오준호 대표의 미래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