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이글스 전 대표이사 박찬혁(체육교육 91), 야구는 직구, 인생은 직진
  • 작성일 2025.02.10.
  • 작성자 고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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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이글스 전 대표이사 박찬혁(체육교육 91)
야구는 직구, 인생은 직진

박찬혁 교우

2022년 발표한 야구 다큐멘터리 〈한화이글스: 클럽하우스〉의 첫 회에서 구단의 한 스태프는 아프지만 객관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모든 사람이 우습게 생각하는 팀이 되어 버렸습니다." 여섯 시즌 연속 KBO 최하위를 기록하던 한화이글스에 2021년 구단 대표이사로 취임한 박찬혁 교우는 3년 반의 재임 기간 동안 힘을 다해 팀을 일궜다. 그가 사임한 2024시즌 최종 순위는 10개 구단 중 8위. 여전히 불만족스러운 순위지만, 지금의 한화이글스는 그 누구에게도 더 이상 우습거나 만만한 팀이 결코 아니다.


외국어고등학교에서 스포츠 에이전트의 꿈을

고등학생 때는 어떤 학생이셨나요?

외고(대일외고)에 진학하면서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 다양한 배경과 캐릭터를 가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죠. 고3 때 담임 선생님과 진로 상담을 하던 중에 스포츠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부모님 앞에서 "글쎄, 이놈이 짐을 지는 머슴이 되겠답니다"라며 크게 혼난 기억이 생생합니다. 학교 망신시키는 학생이라는 소리까지 들었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학교 문을 나오시면서 "하고 싶은 거 하겠다는 게 이렇게 혼이 날 일이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신문사 기자였던 어머니는 의식이 깨어 있는 분이셨어요. 부모님이 이렇게 나를 믿어 주시니, 나답게 뭔가 이루어 봐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이미 스포츠 산업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하신 것인가요?

어릴 때부터 운동광 소리를 들었고, 마이클 조던과 스코티 피펜이 활약하던 NBA(미국프로농구) 팬이었죠. 전 세계를 상대로 미국 농구의 황금기를 열었던 NBA 사무국 총재 데이비드 스턴 같은 인물에게 심취해 있었어요. 그를 NBA의 총재(commissioner)라고 부르는 것도 너무 멋있더라고요(웃음).


한화이글스 선수들과 함께

고려대 캠퍼스에서 이미 시작된 '프론트 라이프'

고려대와 정말 잘 맞으셨을 것 같아요.

고려대 캠퍼스를 처음 봤을 때부터, 심장이 뜨거워지더라고요. '여기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중앙농구동아리 '농연', 체육위원회 산하 교내경기실 활동을 신나게 했습니다. 특히 'Intramural sports'라고 부르는 대학의 교내 스포츠 리그는 해외 대학들에는 많이 있지만, 당시 국내에선 유일하게 고려대에만 있었어요. 교내 리그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일들을 얼마나 신나게 했는지 몰라요. 농구동아리나 교내경기실 모두 법대, 공대, 문대 등 타 학과 친구들과의 교류가 많거든요. 다양한 사고와 역량을 지닌 친구들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들을 쌓았습니다.

캠퍼스에서 이미 '프론트(front, 스포츠에서 행정을 담당하는 파트)'로서의 삶을 시작하신 셈이네요.

운동부들이 있는 이공대체육관과 연수관에서 살다시피 했어요. 숙소에서 같이 자고, 훈련도 다 참관했습니다. 학과 동기들 중에는 지금까지도 저를 운동부 선수 출신으로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로요(웃음). 돌이켜 보니,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엘리트 체육 선수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교감하게 됐습니다. 정말 엄청난 자산을 쌓은 것이죠.

한화이글스 경기 모습


체육학 박사에서 광고인, 금융인 그리고 스포츠인까지

고려대를 졸업한 이후의 여정을 소개해 주세요.

고려대에서 체육교육학 박사 학위를 마치고, 국비 지원을 받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포닥(Post-Doctoral, 박사후과정)을 했어요. 다들 교수의 길을 준비하리라 생각했지만, 미국 생활을 하며 새로운 세상과 시야가 열렸고, 그때까지 막연히 입고 있던 이 옷이 내 옷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겠어요, 과감히 벗어야죠.

30대 중반의 나이, 포닥까지 마치고 제일기획 신입 공채에 도전했어요. 운 좋게 입사 합격 후 경력을 인정받아 경력직으로 시작했고요. 낯선 환경인 데다, 한참 어린 후배들보다도 부족하다는 생각에 5년간 휴일도 없이 무조건 일을 배웠어요. 훌륭한 동료들이 많아 마케팅 사관학교에 입사한 느낌이었죠. 다만, 남들만 따라 해서는 내 것이 없겠다 싶어 스포츠 마케팅을 개척한다는 다짐으로 전문성을 길렀습니다. 또 한화그룹에서는 스포츠 업무와 브랜드 마케팅을 맡아 냉철한 비즈니스의 책임감과 정무적인 균형감을 배웠고요. 제일기획, 한화생명, 한화그룹에서 일하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2011 대구 세계육상경기대회(IAAF) 유치, 첼시FC, SF자이언츠, 유벤투스 등 해외 명문 구단과의 협업, 손흥민, 김연아, 김주형 선수 후원, KFA, KBL, KBO 스폰서십 및 LPGA, KLPGA, KPGA 등과 골프 대회 총괄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커리어를 쌓았습니다. 국내 스포츠마케팅계에서 유례없이 뉴욕광고제, 레드닷디자인어워드, iF디자인어워드 등 굵직한 상도 많이 받았어요.


좌우명, 인생은 직진이다

30대 중반에 박사에서 신입사원으로 방향을 틀었는데, 늦깎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후 더 빠르게 달려오신 것 같아요.

제 좌우명은 '인생은 직진이다'예요(웃음). 자신만의 명확한 신념을 쌓고 그 기준에 맞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나아가는 삶을 추구합니다. 어려운 순간마다 요리조리 회피하지 않고 정면 돌파로 나아간다면 그게 곧 나의 길이 될 것이라고 믿죠. 고등학교 진로 상담 때부터 해외 포닥, 광고 회사 입사, 광고 회사에서 당시 불모지였던 스포츠 분야 지원 등 다들 안 된다고 했던 길들을 택해 왔습니다. 그래서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 영광도 누렸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해내야 한다는 부담과 막막함에 많이 힘들어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인생의 발자취가 쌓이는 것에 유독 소중함을 느낍니다. 제가 이렇게 삶에서 진취적으로 도전하고 추진하려는 태도에는 분명 저도 모르게 스며든 고려대 정신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힘겨울 때마다 스스로를 지탱할 힘과 나만의 기준이 되어 준 데에 감사한 마음입니다.


야구 경기장 플로어에서

한화이글스에서의 3년 반, 쓰고 치열한 영광의 시간

한화이글스 마케팅 실장으로 마스코트 '수리'를 제작하고 유니폼을 리뉴얼하는 등 다양한 브랜딩을 실행하며 KBO에 신선한 충격을 던진 그는 2021년, 한화이글스의 대표이사로 돌아왔다. 그리고 3년 반 동안, 그는 가장 뜨거운 도전을 진행했다.

취임 후 'THIS IS OUR WAY'라는 2021 시즌 슬로건은 굉장히 강력했습니다. 대표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것은 무엇인가요?

'강한 팀은 강한 프론트에서 나온다'라는 믿음으로, 5년 안에 재창단 수준의 팀 리빌딩을 완성시키고자 했습니다. 선수단 전력과 프론트의 전문성은 물론, 신축 구장 등 하드웨어와 구단의 자생력 있는 비즈니스 구축까지 망라해서요 .국내 스포츠 구단들은 모기업 의존도가 절대적이고, 인사권과 예산 집행권이 없다 보니, 늘 '구단의 시간'을 만드는 데 실패했어요. 빠르게 판단하고 즉각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에, 모기업에 보고하고 결재받는 동안 엇박자가 나서 타이밍을 놓치기 십상이죠. 저는 구단 자생력을 키우고, 그 힘이 경기력 상승, 나아가 팬덤 확장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기 위해 도전했습니다. 궁극적 목표는 5년 내 우승이었고요.

실제로 모기업 계열사들을 다니며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셨다는 일화가 KBO 팬들에게 화제를 모았습니다.

맞습니다. 그룹 계열사뿐만 아니라 서울 및 연고지 기업들의 광고도 부지런히 유치해서 외부 광고 수입을 3배 이상 올렸어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위해 국내 최초로 구단 디지털 채널 부서와 디자인 파트와 영업 파트를 별도로 만들어 수익 모델을 성공시켰습니다. 모기업에 기대지 않은 구단의 자체 비즈니스 수입이 250% 성장했어요. 이렇게 늘어난 수입으로 처음 영입한 선수가 구단에서 7년 만의 FA인 채은성 선수였고, 이어서 타 구단의 더 좋은 오퍼에도 이글스를 택한 이태양 선수와 안치홍 선수를 영입했고, 그리고 류현진 선수의 복귀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연봉은 구단에서 자체적으로 벌어들인 수입으로 충당할 수 있었는데 아마 국내에선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일 것입니다.

류현진 선수에게 유니폼을 입혀주는 박찬혁 교우

엄청난 베테랑들을 연이어 영입한 이글스의 광폭 FA 행보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프론트로서 가장 긴장되고 조심스럽게 추진하는 일이 선수 영입입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에게 프러포즈하는 것처럼요. 류현진 선수는 거의 1년간 공을 들였어요. 식사하다가 '이제 돈이나 명성보단 고향으로 복귀해서 재능의 환원 차원으로 선수 생활을 정리하는 것이 어떤지' 물었더니 울컥하며 '맞다, 무엇보다 기량이 남아 있을때 이글스에서 마무리를 하고 싶다'고 말하더군요. 저도 류 선수의 진심에 뭉클했습니다.


REBUILDING IS OVER, 이글스에서의 가장 뜨거운 3년 반

2024년에 'REBUILDING IS OVER'라는 슬로건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시즌 중반에 자진 사퇴하셨어요.

2024년 초반 리그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1위를 달렸어요. 하지만 냉정하게 우리의 기량이 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패배가 쌓이자 오히려 팀 전체가 더 큰 불안감에 휩싸이더라고요. 초반의 큰 기대감이 실망을 넘어 분노로 돌아서게 됐는데, 이때 대표인 제가 책임지고 매듭짓지 못한다면 몇 년간 큰 수렁에 빠질 것이 자명했습니다.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저는 삶에서 쌓아 온 책임감에 대한 기준을 지킨 것 같아 크게 후회는 없습니다. 5년 목표로 구단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3년 반 동안 이룬 구단의 성장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만 그 끝이 내 몫이 아닐 뿐이죠. 사임 발표 후, 선수단이 저를 클럽하우스로 부르더니, 주장이 선물을 주며 뜨겁게 부둥켜 안아 주더군요. 선수 한 명 한 명과의 인연과 사연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한화이글스에서의 뜨거운 3년 반은 제 인생에서 하나의 큰 기둥을 쌓은 것 같습니다. 팬들께 좋은 성적을 보여 드리지 못한 것이 가장 죄송합니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지난 3년간의 성장이 앞으로 1-2년간의 성과로 이어지리라는 100% 확신이 있습니다. 부디 선수들을 조금 더 응원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화이글스 대표이사로서 보낸 3년 반은 제 인생에서 굉장히 영광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걸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

그는 늘 치열했던 삶에 잠시 찾아온 방학을 즐기며 삶의 새로운 방향을 찾고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한 이글스의 슬로건은 'THIS IS OUR WAY'라고 했다. 머지 않아 보게 될 그의 새로운 길, 그의 직진을 응원한다.

SPECIAL : 박찬혁 전 한화이글스 대표이사가 전하는 "스포츠 산업 진출을 꿈꾸는 고려대의 후배들에게"

사인하는 박찬혁 교우

# 고려대의 학풍, 특히 고대인의 팀워크와 진취적 성향은 스포츠 업계에서 요구하는 자질과 유사합니다.

# 사회생활은 매우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에 자신의 철학이나 사고의 뼈대가 견고하지 않다면, 그 순간의 이익만을 좇는 처세를 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회 곳곳에서 '고대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대의를 위해 결단하는 고대인의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후배들 역시 그런 고대인의 정신을 이어가길 바랍니다.

# 스포츠 산업은 결코 안락한 책상에서 말랑한 아이디어로 이룰 수 없는 분야입니다. 손발에 흙도 묻히며 산업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진정성, 진중함, 추진력, 네트워크 등 고대에서 얻을 수 있는 큰 자산들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자신의 확고한 방향성을 설정하기를 바랍니다.

# 남들이 다져놓은 길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아 몰두하는 삶 또한 좋은 선택이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두려움도 찾아오겠지만, 고대생이라면 이를 극복할 역량을 가지고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 주변에서 스포츠 산업의 리스크와 이에 대한 우려를 표할 텐데, 사실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성공 확률이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어려움이 생겨도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스스로 심어주었으면 해요. 그리고 그런 마음을 먹었다면 깊게 한번 들어가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