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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으로 행복을, 오답으로 성장을 - 의과대학 나흥식 교수(의학과 74)
  • 글쓴이 : 고대 TODAY
  • 조회 : 1299
  • 일 자 :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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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으로 행복을, 오답으로 성장을
의과대학 나흥식 교수(의학과 74)

 


“어서 오세요.” “또 오세요.” 앞말은 그의 첫마디고, 뒷말은 그의 끝인사다. 환영과 환송, 그리고 환대. 환한 미소를 내내 품고 있는 그를 보노라면, ‘환하게’ 나이 든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저절로 알게 된다. 국내 최고 뇌의학자로서 ‘생물학적 인간’에 대해 오래 통찰해온 그는 나이 듦의 서러움과 즐거움을 조금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줄 안다. 우리는 잊었지만 우리 몸은 잊지 않은, 소통과 배려와 비움에 관하여….

하던 것을 새롭게, 맡은 것을 즐겁게

다름이 ‘이음’을 만나면 새로움이 된다. 그는 의학자이기 전에 ‘연결자’다. 서로 다른 것을 하나로 이어, 전혀 새로운 것을 탄생시킨 ‘발명가’이자 ‘선구자’다. 일찌감치 새 길을 열었지만 저만치 홀로 나아가지 않고 나란히 함께 걸어왔다. 생물학적 지식에 인문학적 지혜를 곁들인 강의로, 이과와 문과 대학생 모두가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했다. 그 세월이 어느덧 14년이다. 이음으로 성장하고 이음으로 행복했던, 인생의 황금기가 바로 그 기간이다. 하던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 그것이 즐겁게 나이 드는 비결임을, 말이 아닌 삶으로 그가 일깨워준다.



“이과와 문과를 철저히 갈라놓은 까닭에, 대한민국 학생들은 건너편 학문에 관심이 없어요. 서로 잘 모르기 때문에 상대편을 폄하하기 일쑤고요. 하지만 알면 달라져요. 알수록 새롭기 때문에 결국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생물학적 인간」은 그 믿음으로 만든 융합강의예요. 그동안 ‘수업료가 아깝지 않다’는 말을 수강생들로부터 수없이 들었어요. 한 법대생은 ‘강의를 듣고 의료법학을 전공하고 싶어졌다’는 소감문을 써내더라고요. 보람과 즐거움이 가득한 시간이었어요.”

그 수업을 위해 그는 자신의 전공과 관련된 책보다 인문학 서적을 더 많이 구입했다. 신간의 숲을 쉼 없이 누비면서, 자연과학과 연결 지을 그 무엇을 끝없이 찾아냈다. 그러는 동안 확신하게 됐다. 모든 학문은 인간에서 시작해 인간으로 귀결된다는 것을. 인간이라는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학문과 학문을 더 부지런히 연결해나갔다. 그 과정이 거듭될수록 세상을 보는 눈이 넓고 깊어졌다. 좋은 강의를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덧 ‘좋은 인생’을 위한 일이 돼버렸다.


▲연구실 한켠을 장식한 수많은 석탑강의상과 상패들

“즐거움이 큰 만큼 부끄러움도 커요. 「생물학적 인간」을 강의하던 초창기엔 지금처럼 강의가 깊지 못했어요. 지금 이 생각을 그 때도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이 가끔 들어요. 이번 학기를 마치면 정년퇴임을 해요. 하지만 아쉽지 않아요. 퇴임 후 「생물학적 인간」강의를 계속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렇다면 지혜와 통찰을 좀 더 쏟아 부어,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강의가 되게 노력할거에요.”

의과대학 「생리학」을 강의를 때도 그는 기존과는 다른 수업방식을 도입했다. 인간의 유전자에 남은 ‘집단사냥’의 속성을 이용해, 같은 팀의 구성원들이 서로 협동하며 함께 학습하고 그 결과를 똑같이 나눠 갖도록 한 것이다. 학생들의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이타적인 인간은 이기적인 인간에 지기 쉽지만, 이타적인 집단은 이기적인 집단을 반드시 이긴다는 진리를 그 수업이 톡톡히 보여줬다.

놀랍도록 새로운 방식의 강의로 그는 2017년 중앙일보가 각 대학교에서 선정한 ‘강의왕’에도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올렸다. 청춘이 다시 시작됐다.

우리 몸에 새겨진 소통, 배려, 그리고 비움

석탑강의상을 18번이나 수상한 「생물학적 인간」이, 2019년에는 강의혁신상까지 받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강의가 인기를 끌면서 수강희망자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게 됐어요. 그게 안타까워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으로 동시에 500여명이 수업을 듣는 ‘NEMO 강의’를 개발했죠. 이것을 높게 평가한 것 같아요.” 100명만 듣던 수업에 500명이 참여할 수 있게 됐지만 그의 결핍은 채워지지 않았다. 한 학기에 500명이라고 해도, 그보다 많은 학생이 자신의 강의를 여전히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쓴 것이 [What am I?]라는 책이다. 그간의 강의내용을 정리한 이 책은 지난 초여름 발간돼 ‘과학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강의한 내용을 정리해 문장으로 쓰다 보니 강의할 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보였다. 그 부분을 보강하면서, 책 내용은 물론 강의노트까지 튼실해졌다. 모든 과정이 행복이었다. “즐겁게 나이 들어가려면 타인과 눈 맞추는 시간을 늘려야 해요. 같이 웃으며 서로 소통해야 엔도르핀이 솟고, 그래야 소속감과 안정감이 생기니까요. 여기서 알아야 할 생물학적 진실이 있어요. 흰자위를 가진 건 인간뿐이에요. 먹이를 찾기 위해 땅만 바라보는 네 발 짐승과 달리, 직립보행을 하게 된 인간은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얼굴을 마주했을 때 자신의 시선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게 바로 흰자위예요. 교감하기 위해 흰자위를 갖게 된 인간이, 각자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느라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 시대가 됐어요. 네 발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아 씁쓸해요.”

즐겁게 나이 들기 위한 또 다른 덕목으로 그는 비움과 배려를 꼽는다. 비움으로 여백을 확보하고, 그 여백 안에서 서로 배려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풍요로운 나이 듦의 비법이라 굳게 믿고 있다. 비움과 배려는 인간의 몸이 가진 특징이기도 하다. 우리 몸의 어떤 장기도 자기 능력을 100% 쓰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모든 장기가 자기를 비우고 덜어내며 기능이 좀 더 필요한 다른 장기에게 혈류를 양보한다는 것. 우리 몸에 새겨진 지혜를 우리가 다시 배우게 되기를 그는 진심으로 희망한다. “인간이 인공지능을 이길 수 있는 세 가지 포인트가 있어요. 흰자위, 오답노트, 통찰이 그거예요. 앞서 말한 대로, 흰자위는 인간만이 가진 소통의 도구예요. 서로 손을 잡고 눈을 맞춰야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세상에는 여전히 많습니다. 오답노트도 인간만의 것이에요. 인공지능은 빅데이터를 통해 정답을 찾아갈 뿐 오답을 축적하진 못해요. 하지만 인간은 숱한 경험을 통해 틀린 답을 쌓고, 그 안에서 옳은 답을 찾아가요. 그 과정에서 통찰력이 생기고, 통찰을 통해 창조를 이어가죠. 오답노트로 통찰을 얻으려면 수많은 경험이 필요해요. 나이 듦의 진가가 여기 있어요.”

인간의 ‘기억’을 연구하고 싶어 기초의학을 선택한 그는 ‘청진기를 버린’ 젊은 날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선택이 몰고 온 기쁨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소통’이 있다. 1990년 모교 교수로 부임한 이래 그는 자신의 강의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이름을 모두 외워왔다.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따뜻한 소통의 첫걸음임을 잊지 않은 까닭이다. 학생들에게 존댓말을 쓰되 친구처럼 대화하길 즐긴다. 몸을 낮추고 눈을 맞추는 것이 그의 가장 큰 행복비결이다.


▲(왼쪽)'생물학적 인간'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이 담긴 나흥식 교수의 저서

“오래 전부터 집에서 제가 요리를 주로 해요. 뇌과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인간이 어떨 때 맛있다고 느끼는지 궁금했어요. 요리가 실험하는 것 같아요. 식구들이 맛있다고 하면 통쾌하지요. 실험에 성공한 것처럼.” 대학 강단을 떠난 뒤엔 유치원생들의 야외학습을 지도하는 게 꿈이다. 과학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이야기 할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할아버지가 벌써 눈앞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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