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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을 나누며, 없던 것을 만들며 - 국어교육과 박영순 명예교수
  • 글쓴이 : 고대 TODAY
  • 조회 : 559
  • 일 자 : 2019-10-24


Donor's Interview
가진 것을 나누며, 없던 것을 만들며
- 국어교육과 박영순 명예교수

 


학자, 교육자, 문인. 각자의 자리에서 오랜 세월 값진 성취를 쌓아온 그는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를 ‘고려대’라는 둥지에 둔다. 이곳에서의 교수생활이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라 여기는 것이다. 세 번에 걸쳐 1억 3천만 원을 기부한 것은 그 때문이다. 고마움을 갚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눔’이라고 그는 굳게 믿고 있다. 퇴임한 지 11년이 지났지만, 그의 학교사랑과 학문열정은 그대로다. 그의 봄날은 가지 않았다.

나눔, 고마움을 갚는 가장 좋은 방법

창밖으로 북악산과 형제봉과 보현봉이 한눈에 들어온다. 창틀이 그 자체로 그림액자다. 열두 폭의 수묵화가 ‘눈높이’로 바라보이는 서재. 산과 하늘이 멀지 않은 이 방에서, 그는 단 하루도 같지 않은 바깥풍경을 매일 새롭게 바라본다. 여름은 여름이라 좋고 가을은 가을이라 좋다. 겨울은 겨울이라 눈부시다. 날마다 새것 같고 철마다 처음 같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이 집에 산 지 벌써 40년이 됐네요. 이 집에서 세 아이를 기르고, 여기 살면서 40권의 책과 200편의 논문을 썼어요. 요샌 소설을 쓰고 있고요. 여기서 보낸 하루하루가, 돌아보면 모두 축복이에요.”



요즘 그는 함께 산 지 53년 된 남편과 매일 오후 등산을 한다.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를 ‘지팡이’처럼 의지하며 북한산에 오른다. 정상까지 가는 건 이 부부의 스타일이 아니다. 중턱에서 미련 없이 되돌아오면서, 해 지기 전의 숲 향기를 폐부 깊숙이 밀어 넣는다. 같은 집에서 같은 꿈을 꾸며 살아온 남편은 그의 ‘나눔’을 선뜻 지지해준 선행의 동반자다. 그가 고려대에 큰돈을 기부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준 인생의 응원자다.

그의 기부역사는 정년퇴임을 2년 앞둔 2006년에 시작됐다. 자신이 몸담아온 사범대학 건물이 새로 지어지던 시점이었다. 축하와 감사의 마음을 담아 5천만 원의 기부금을 사범대에 내놓았다. 나눔이 ‘기쁨’의 다른 얼굴임을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그 기쁨을 다시 누린 건 지난여름의 일이다. 6월과 7월에 각각 5천만 원과 3천만 원을 국어교육과 발전기금으로 잇달아 기부하면서, 1억 원 이상 고액기부자들의 모임인 ‘크림슨 아너스 클럽’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잊고 있던 기쁨이 다시 몰려왔다.


▲2018 세종문화상 수상 기념사진

“최근 2년간 개인적으로 아주 감격적인 일들이 있었어요. 2017년 ‘한글문화인물’로 선정됐고, 2018년 ‘세종문화상’을 수상했어요. 한글문화인물은 국립한글박물관이 한글문화발전에 기여한 인물을 선정해 그의 삶과 경험을 구술로 기록하는 사업이에요. 보통 1년에 1명을 선정하는데, 그냥 넘기는 해가 있을 정도로 신중하게 사람을 골라요. 거기에 뽑혔으니 정말 큰 영광이죠. 세종문화상도 마찬가지예요.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고 그의 창조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이 상은 정부가 주는 문화상 가운데 가장 큰 상이에요. 국어학자로서 엄청난 영예를 갖게 됐어요.”

연이은 영광 속에서 그는 생각했다. 고려대 교수로 활동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성취는 없었을 거라고…. 밀려드는 ‘고마움’을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다. ‘나눔’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한국어를 세계로, 오랜 꿈을 현실로



그가 고려대 교수로 재직한 기간은 1981년 3월부터 2008년 2월까지다. 학교를 떠난 지 어느덧 11년. 현직 교수가 아닌데도 그토록 큰 영예를 안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어의 세계화’에 이바지한 공로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그는 국어학자 최초로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1970년 미국유학을 떠난 그는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언어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기 시작했다. 순수 언어학에 심리언어학, 사회언어학 등을 곁들여 공부하며 학문의 외연을 넓혔고, 한국어와 영어를 함께 쓰는 교포자녀들을 보며 이중언어 교육의 필요성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그것들은 고스란히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만의 한국어를 ‘세계 속의 한국어’로 만드는 일이 그렇게 시작됐다.

“귀국 후 한국어와 관련된 여러 학회에서 학회장을 맡았어요. 한국어학회, 사회언어학회, 이중언어학회, 국어의미론학회, 어문교육학회…. 그 중 이중언어학회와 국어의미론학회는 제가 창립한 거예요. 학회마다 국제학술대회를 성대하게 개최했어요. 1989년 한·중 학술교류를 위한 이중언어학술국제대회를 중국에서 개최한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때가 한중수교 전이었거든요. 중앙정보부(현 국정원)를 설득하는 일부터 단체비자를 받는 일까지,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무사히 학회를 마쳤어요. 중국 각지의 조선어학회에서, 각자의 논문을 들고 모여들던 모습이 눈에 선해요.”


재직당시 국어교육과 교수들과 함께

2004년부터 3년간 한국어세계화재단(현 세종학당재단)을 이끌었던 그는 국제한국어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세계 10대 언어인 한국어를 지구촌 곳곳에 확산시키는 일에 박차를 가했다.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에 필요한 총서를 발간하고,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한 한국어 무료교육을 실시했다. 교육을 통한 나눔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기쁨이었다.

“경북 예천이 고향이에요. 그곳에서 고교까지 마치는 동안 문예반 활동을 내내 했어요. <예천에서 꿈꾸다>는 그 시절 이야기를 절반쯤 담은 자전소설이에요. 2010년 그 작품을 계간 문예에 발표하면서 소설가로 등단했어요. 맨 처음 꿈이 문인이었으니, 돌아올 곳으로 돌아온 셈이에요.”

문인의 꿈을 이룬 뒤 그는 벌써 장편소설 4권과 소설집 1권, 시집 1권, 수필집 1권을 펴냈다. 그 가운데 <서울20 평양60>은 2015년 그에게 손소희문학상을 안겨준 화제작이다. 이 소설의 실제모델은 1980년부터 그와 교류해온 북한 최고의 조선어학자다. 20년간 서울에 살다 평양으로 건너간 주인공이 그로부터 60년 뒤 ‘두고 온’ 첫사랑을 찾는 이야기다. 놀랍도록 세세한 묘사들은 그가 국어학자로서 북한 관련 인물들과 맺어온 교감 덕분이다. 북한 배경의 소설들을 이후에도 계속 써나가면서,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미리 내딛는 중이다. 남보다 한 발씩 먼저 걷는 것은 그의 오랜 습관이다. 외롭지도 두렵지도 서럽지도 않게, 자기만의 길을 그는 오늘도 묵묵히 걷고 있다.

 

커뮤니케이션팀
Tel: 02-3290-1065 E-mail: hongbo@korea.ac.kr 수정일자 : 2019-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