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연구’는 4차 산업혁명에 이르러서야 새롭게 떠오른 화두가 아닙니다. 심리학은 태생적으로 융합적인 면모를 갖고 있어요. 전공별로 인문학이나 사회학, 자연과학, 경영 학 등과 인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요. 한편 1990년대 말 전세계 심리학 연구 분야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철학 과 심리학, 인공지능, 생물학, 유전학 등의 영역에서 각개 전투로 연구할 게 아니라 학제 간 융합으로 함께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지요. 그러니까 심리학은 20년 넘게 융합 연구를 시도해온 거예요. 작년 고려대가 문과대학에서 심리학과를 따로 분리해낸 것은 심리학이 융합 연구의 허브로서 자리매김하며, 심리학 중심의 융합 연구를 펼쳐나가겠다는 포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채연 교수의 설명대로, 고려대는 2018년 국내 대학 최초로 심리학의 학부제를 도입했다. 학부 내 5개로 세분 화한 전공에는 인접 학문과의 연계성을 높일 뿐 아니라, 사회문제를 접목한 교과 개편을 시도할 예정이다. 한편 고려대 심리학부의 가장 큰 특징은 생리학과 자연과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 보통 심리학이라고 하면 상담 분야를 떠올리기 쉽지만 고려대 심리학부는 각 전공별로 동물 모형을 활용하는 실험실이 갖춰져 있을 만큼 전통적으로 과학적 연구를 지향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 중에서도 김채연 교수가 몸담고 있는 행동인지신경과학전공은 생명과학과의 연계성이 높다. 그는 인지 활동 중 가장 기초적인 감각들을 인간의 경험과 매개해 연구를 펼치고 있다.
“제가 다루는 시지각 연구는 생리학적 메커니즘만을 활용하지 않고 사람의 경험에 관심을 갖는 연구방법론입니다. 대부분의 학문이 시지각과 관련을 맺기에 공대나 자연대, 의대는 물론 패션이나 예술 분야와도 다채롭게 협업을 이루지요. 연구에 있어서는 상당히 스펙트럼이 넓은 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학제적 연구, 자연스럽게 뇌과학적 접근으로 이어지다
김채연 교수가 시지각 연구에 뛰어들게 된 과정은 상당히 흥미롭다. 미학과에 입학했던 그는 원래 예술을 흠모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예술가로서는 남다른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닫고, 방향을 바꿔 예술에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연구자로서의 꿈을 꿨다고. 하지만 곧 실험이나 경험 등을 접목 하지 않고 철학적으로만 접근하는 미학 연구의 한계를 느꼈다.
그때 자연스럽게 인지과학 협동 과정에 들어서며, 예술을 이해하고 느끼는 사람의 ‘마음’을 뇌과학적으로 연구하는 심리학에 입문하게 된다. 그는 처음과 변함없이 예술에 대한 관심사를 유지하면서도 학제간 융합으로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데 몰입했고, 지금에 이르렀다.
“2008년 고려대에 부임할 당시 3D TV 상용화 이슈가 있었어요. 그때부터 끊임없이 산업에 시지각 연구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요. 컴퓨터 디자인이나 영상 지각에 관련한 경험 연구부터 VR 기술에 이르기까지 심리학 연구 니즈가 끊이지 않았어요. 한편 최근에는 예술과 창작 분야에서도 심리학과 뇌과학 연구 성과를 모티브로 삼으려는 욕구가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시시때때로 다르게 반응 하는 사람들의 경험을 코딩해 새로운 결과물을 도출하는 인터랙티브 아트*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로 인해 미디어아티스트들의 협업 요청도 활발해졌고요. 대표적인 예로 한남동에 자리한 D뮤지엄의 개관 전시에도 참여했는데, 빛의 작용에 관한 경험을 연구하며 직접 전시 기획에 참 여하는 과정에서 느낀 즐거움을 잊지 않고 있어요.”
이처럼 다방면의 연구를 즐기는 그는 연구생들과 함께 조현병 환자들의 정서와 시지각 연구에도 진행했다. 조현병 환자들의 정서나 사회적 측면에 대한 연구는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으나, 그들의 감각 등 지각 경험에 관한 연구가 극히 드물어 병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황을 인지했던 김채연 교수. 인지의 가장 기초적인 과정인 감각 지각의 문제를 이해함으로써 환자들의 증상을 이해하고 임상에 활용될 수 있는 지식을 얻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외에도 정말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는데, 특히 4차산업혁명과 관련한 포럼에 참석하며 대중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려는 학제적 움직임에 앞장서고 있어요. 앞서 심리학부 중심의 다양한 융합연구를 이끌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이는 상아탑에서의 연구만을 의미하지 않지 요. 급변하는 사회에서 화두에 오른 AI, 빅데이터, 고령화, 사용자 경험 등의 이슈에 일차적으로는 사회와 학문 간의 괴리를 좁히고, 결과적으로 사회문제에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다하려 합니다.”
김채연 교수는 앞으로 다양한 학제간 융합 연구를 시도 하며, 미래사회에 도움이 되는 연구를 이뤄가겠다고 덧붙 였다.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위하려는 심리학의 미래에는 여전히 ‘사람’이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인터랙티브 아트 미디어아트의 한 갈래로, 양방향 인터페이스를 이용해 작품과 감상자의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