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면 충분하다 - 김동기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상학 54)
  • 글쓴이 : 고대TODAY
  • 조회 : 1190
  • 일 자 :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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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충분하다
김동기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상학 54)

 


권위와 권위주의는 전혀 다른 말이다. 권위는 남들이 부여하는 것이고 권위주의는 자신이 내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유통근대화의 선구자인 그는 그 분야 최고의 권위자임에도 권위적인 삶과 거리가 멀다.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고, 다른 세대와 소통할 줄 알며, 스스로 행복을 만들 줄 안다. 지난해 학술인 최고의 ‘명예직’인 대한민국학술원 회장으로 선출되고도, 그의 삶은 여전히 소탈하고 소박하다. 낮은 삶이 더없이 높다.

노년에도 계속되는 ‘최초’의 길



그를 만난 건 회장실이 아니라 회장실 앞이다. 처음 만나는 누군가를 위해 그가 미리 ‘마중’을 나왔기 때문이다. 따뜻한 표정과 다정한 말씨로 상대방과의 거리를 그는 순식간에 좁혀버린다. 온화한 얼굴 위론 소년의 미소가 언뜻거리고, 소탈한 몸짓 위론 청년의 패기가 어른거린다. 노년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인생의 봄날은 아직 그의 것이다. “지인들이 나더러 ‘여든다섯 살에 할 일이 생겼다니 대단하네’ 그래요. 이런 인사를 받으니 얼떨떨해요. 매일 면도 하고 양복 입고 나와서 일할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 하고 행복한지 몰라요.”

그가 출근하는 곳은 대한민국학술원이다. 1954년 설립된 국가기관으로, 학술발전에 현저한 공적이 있는 학자를 우대하고 지원함으로써 학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곳이다. 지난해 4월 2일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이 학술 기관의 제37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최초의 경영학자 출신 회장이자 최초의 고려대 출신 회장으로 화제가 됐다. ‘최초’로 점철된 삶에 또 다른 처음들을 불러 들여놓고, 그는 정작 ‘이 나이에 봉사할 수 있어 행복하다’ 고 스스로를 낮춘다.

몸은 한껏 낮췄지만 성과는 결코 낮지 않다. 지난 1년 3 개월 동안 그는 학술원의 여러 시설을 새것으로 바꾸거나 새롭게 꾸미고, 학술원에서 회원들에게 지급하는 연구비와 상금을 크게 올렸다. 외국의 저명학자들을 매년 초청해 학술원 주최의 국제학술회의를 열고, 일본사학원과 함께 매년 공통관심사를 주제로 연구발표회 및 토론회를 개최하고 있다. 대기업을 상대로 23억 원의 연구기금을 직접 모금해 학술원 부설 연구재단의 연구기금 확충에도 앞장섰다. 남은 임기 동안에도, 대한민국 학술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나씩 해나갈 생각이라고 소신을 피력했다.

문학소년, 한국마케팅의 아버지 되다

“십대땐 문학도가 되고 싶었어요. 내가 쓴 시가 당시 중·고생들의 교양잡지였던 학원 문학상에 최우수상으로 당선되기도 했고, ‘가리방’을 긁어서 시집을 내기도 했죠. 하지만 중학교 4학년 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상황이 달라 졌어요. 부산으로 피난해 막노동으로 생계를 잇다가, 전쟁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와보니 온통 폐허가 됐더라고. 안정적인 밥벌이가 절실했어요. 시만 써서는 하루 세 끼 먹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결국 경영학을 선택했습니다.”

1954년 고려대 상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당시 유진오 총장이 수석 입학을 축하하는 의미로 금 파커 만년필을 선물했던 기억이 여태 생생하다. 졸업 후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 고려대 경영대학은 워싱턴대 경영대 학과 학술교류 협정을 맺고 있었다. 고려대 정수영 상과 대학장과 워싱턴대 경영대학장의 권유와 도움으로 유학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뉴욕대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사례연구(case study)를 통한 강의법을 배웠다. 귀국 후엔 미국에서 익힌 것들을 바탕으로 마케팅 불모지였던 미국식 마케팅을 처음으로 도입한 해외 유학파의 한 사람이다. 그는 <현대마케팅원론> <국제화시대의 경영전략> <현대유통기구론> <한국의 물류산업>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 마케팅의 과학화와 체계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70-80년대엔 상공부 산하 ‘유통근대화추진위원회’의 핵심 멤버로 활동하면서 슈퍼마켓, 할인판매점, 편의점, 쇼핑몰 등의 시설을 국내 최초로 도입했다. 백화점 직영체제를 실시하고 소비자신용 카드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소비자보호법 제정을 이끌어 전근대적이던 한국유통에 혁명의 불씨를 당겼다. 유통근대화에 이바지한 공로로 대통령 특별표창을 받기도 했다.

“당시 한국엔 마케팅이란 개념조차 없었어요. 판매 전 판매, 판매, 판매 후 판매가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제대로 된 마케팅인데, 사전 판매나 사후 판매 같은 개념이 아예 없던 시절이었죠. 미국도 유통을 근대화하면서 선진국이 됐어요. 조국의 선진화에 일조하고 싶어서, 힘든 줄도 모르 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교육자로서도 선구자의 삶을 이어갔다. 1965년부터 1999년까지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로 재직한 그는 ‘영어로 강의하는 교수’로 일찍이 이름을 드높였다. 민족고대에서 세계고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진작부터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대학원 설립을 주도한 것도 고려대를 세계 속의 명문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1대와 2대 국제대학 원장을 역임했고, 학생들을 상대로 <국제마케팅>을 영어로 강의했다. 퇴임 후엔 일본 중앙대학 초빙교수로 건너가 상학부와 대학원생들을 가르쳤고, 2005년엔 모교 국제 대학원 석좌교수로 초청돼 2016년까지 강의를 계속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그는 언제나 ‘현역’이었다.

가진 것에 만족하는 지혜

그의 하루는 운동으로 시작된다. 정년퇴임 전부터 약 20년 간 동네 스포츠클럽에서 체력을 단련한 것이 지금의 건강을 유지하게 해준 비결이다. 다소 격렬한 아침운동을 통해 날마다 새로운 활력을 충전한다.

“많은 친구와 교류하는 것도 활력 있게 살아가는 비결 인것 같아요. 현재 10여 개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고 있어요. 나보다 수십 년 아래인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친구로 지냅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훤히 보이더라고요. 편안한 마음을 갖는 것도 즐겁게 나이드는 방법이에요. 그러려면 헛된 꿈이나 과한 욕심을 버려야 해요. 자신의 분수를 알고 현실에 만족할 줄 알아야 진정한 행복이 깃들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게 내 행복의 진짜 비결이에요.” 만약 지금 불행하다면,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지 않고 남의 것을 탐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아는 것. 현대 마케팅이론이 그가 한평생 쌓아온 ‘지식’이라면, 안분지족의 삶은 그가 온몸으로 터득해낸 ‘지혜’다. 지식과 지혜의 숲에서 그는 오늘도 유쾌한 산책을 거듭하고 있다.

“행복은 ‘셀프’예요. 남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길 기다리 지 말고, 내 행복의 씨앗을 내 스스로 만들 줄 알아야죠. 그 런 면에서 행복은 ‘향수(香水)’이기도 해요. 자신에게 먼저 뿌려봐야 그 향기가 좋은지 아닌지 알 수 있듯, 스스로 다 양한 시도들을 해봐야 그게 행복인지 아닌지 알 수 있어 요.”

그는 훌륭한 인터뷰어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경제에 이바지한 인물 70명을 7년간 인터뷰해, 2017년 <한국의 CEO 70인>이란 책을 펴낸 바 있다. 좋은 인터뷰는 ‘핵심을 관통하는 질문’으로 이뤄지고, 좋은 질문은 ‘세상을 향한 관심’으로 가능해진다. 우리 나이로 여든 여섯 살인 그는 지금도 강렬한 호기심으로 예리하게 세상을 읽어낸다. 날카로운 시선 속에 부드러운 미소가 녹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