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고려대학교 KOREA UNIVERSITY

QS 세계대학평가 전공분야별 순위 27개 분야 100위권 내 차상위권 진입

2023 QS 세계대학평가 아시아 7위


HOME

현재 페이지 위치

 

글번호
464163
일 자 :
2015-04-28
조회 :
1720
글쓴이 :
교육매체실
남재 김상협 선생 20주기 추도식(추모사 - 염재호 총장)


남재 김상협 선생 20주기 추도식(추모사 - 염재호 총장)

[고려대학교 KTN] 남재 김상협 선생 20주기 추도식(추모사 - 염재호 총장)


2015.4.20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



 

동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lRWf6-FBVw8&spfreload=10


남재 선생 20주기 추모사

존경하는 내외 귀빈 여러분,

떠나가신 어른을 추모하기 위해 참석하신 가족 친지 여러분,

남재 김상협 총장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어언 스무 성상이 흘렀습니다. 남재 선생께서 사랑하고 정성을 쏟았던 안암의 언덕에 봄은 찾아왔지만 저희 곁에 남재 선생이 안 계시다고 생각하니 허허로운 마음 긍할 길 없습니다. 이곳 안암 동산에서 남재 선생이 떠난지 일월성신이 벌써 스무 번의 주기를 흘렸 다고 하니 그 상실의 세월이 차마 믿기지 않아 정신마저 아득해져 오는 듯합니다.

그토록, 선생의 존재는 드높고 드넓었습니다. 남재 김상협 총장님은 지난 세기 후반을 살았던 우리 고려 대학교 가족 모두에게 흠모의 대상이었습니다. 엄혹한 정치적 겨울을 견뎌내야만 했던 청년 학도들의 고뇌와 격분과 방황을, 선생께서는 누구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함께 호흡하며 같이 아파하셨습니다. 남재 선생께서 두 차례에 걸쳐 고려대학교 총장에 봉직하신 1970년대는 경제번영의 이념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첨예하게 충돌하던 바로 그 시대였습니다. 비 록 역사적 평가의 많은 부분이 아직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다고는 하나, 군사적 폭압 아래에서 세상과 타협할 줄 몰랐던 젊은 순수한 영혼들에게는 차마 감내하기 힘든 고통의 나날이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선생의 말씀 중에 좌절, 방황, 절망과 같은 음울한 표현들이 눈에 띄는 까닭도 아마 그런 연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괴로움들이란 우리 안암골 호랑이들에게는 선선히 떨쳐내고 극복해야 하는 한낱 작은 장애물에 불과했습니다. 왜냐하면 김상협 총장님과 같은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역사의 신을 믿는다” 라고 하시면서 암울한 시대에 좌절하던 저희 학생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전해주시던 남재 선생님이셨습니다. 긴급조치 7호로 휴교령이 내려질 때 까지 정부의 휴업 권고를 거부하고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심초사 하셨던 총장님이셨습니다. 긴급조치 7호가 내려지기 전날 저희들이 위수령 때와 같이 군인들이 난입할까 전전긍긍하며 중앙도서관에서 철야농성을 하고, 날이 밝은 후 대강당을 둘러싸고 구호를 외치며 데모를 할 때 묵묵히 지켜보시며 시대의 아픔을 함께 하신 모습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1970년대 고려대학교는 여타 주요대학들의 총장들을 배출하는 대학이었습니다. 당시에 두 차례에 걸쳐 고려대학교 총장직을 역임한 남재 선생은 곧 모든 대학총장들의 총장이었습니다. 총장님으로서 남재 선생이 일년에 한번 저희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게 되면 대강당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고대생뿐 아니라 시내 주요대학의 학생들이 구름처럼 몰려 왔기 때문입니다. 남재 선생께서는 일찍이 모택동 사상을 연구하시어 국제정세의 현재와 미래전망을 명쾌하게 분석해 주셔서 당시 엄혹하던 시절에 국제사회의 거대한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런 미래에 대한 혜안을 갖고 아직 외교 관계가 없었던 중국, 러시아의 어문학과를 신설하시고, 스페인어, 일본어 등 다양한 외국어 전공 학과를 신설하시어 고려대학교가 민족의 대학에서 21세기 글로벌 KU로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을 미리 만들어주셨습니다.

〈고려대학교 백년사〉는 “1970년 10월 2 일 50대의 젊은 김상협 총장이 부임하자 안암골은 새로운 활력으로 가득 찼다”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당시, 그러한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선생은 ‘치밀한 지성과 대담한 야성’을 겸비한 새로운 지도자상을 부르짖었고, 그의 외침은 1970년대 ‘본교생들의 내면세계를 지배한 고대 활력의 원천’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기억하는 1980년대 이후 본교의 대대적인 확대와 발전이 모두 선생으로써 발아했음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973년 입학식에서 남재 선생님의 입학식사를 듣고 입학을 했고, 1978 년 졸업식사를 듣고 졸업을 했습니다. 1975년 긴급조치 7호로 학교가 휴교되고 남재 선생이 총장직을 물러나셨지만 재학중 일년 휴학한 덕에 1977년 8월 다시 총장으로 돌아오신 남재 선생님의 졸업생이 되는 행운을 얻게 된 것입니다. 졸업할 때 남재 선생님으로부터 총장상을 받고 졸업한 것이 유학을 가고 교수가 되고 이제 총장이 된 제 삶에서 아직도 가장 큰 영광으로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남재 선생은 언제나 포효하듯 연설하셨습니다. ‘시대가 어떻게 변화하고 환경이 제아무리 흔미의 극을 달린다고 하더라도 우리 고려대학교에 주어진 무거운 책무는 영원히 변함없으리라”는 준엄한 연설은 호랑이의 포효와 같았습니다. 그 ‘무거운 책무’ 란 곧 ‘민족의 자유’, ‘민족의 정의’, ‘민족의 진리’를 일컫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놀랄만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룩한 것도, 고려대학교도 전 세계의 주요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것도 모두 남재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무거운 책무를 고대 구성원 모두가 겸허하게 실천한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고려대학교를 모든 대학의 미래가 되도록 가꾸어 나가고자 합니다. 개척하는 지성을 키워내 이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는 대학이 되고자 합니다. 오늘 저는 미래의 개척하는 지성을 키워내기 위한 지혜와 용기를, 민족의 미래를 개척하고 민족의 미래를 고민하시던 김상협 총장님께 여쭙고자 합니다. 언제나 고려대학교를 사랑하시던 선생께서는 저 하늘의 별이 되어 우리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연년세세토록 우리 고려대학교의 나아갈 바를 가리켜 주실 것으로 확신합니다.

영원한 사표이신 김상협 총장님

그립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 년 4월 20 일

고려대학교 총장 염재호 올림


인터넷방송

영상게시판 리스트로써 썸네일이미지, 제목, 날짜 정보를 제공합니다.

더보기